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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사순 제 4주간 목요일 / 정인준 신부님 ~

4월 3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주님,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 중에 하나라고 하지요.

나이 차이가 많은 부부가 있었는데 부인인 자매 한 분이 제일 약오르는 것은 자기를
어린 아이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될 수가 없는 것이 처음부터 어른과 아이의 차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타이르고 어르는 기분이라고 자존심까지 상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부부싸움은 서로의 관계가 동등할 때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또는 ‘사랑놀음’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서로가 동등할 때에 성립될 수 있는
묘한 관계의 표현입니다.

이런 말이 성립될지는 몰라도 상대를 동등하게 대접할 때에 비로소 싸움에서 건성이 아닌
온 힘을 다한 싸움, 다시 말해 큰 소리도 나가고 또 속상해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겉으로는 주님께서는 일방적인 싸움에 말려들어 가는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은 다수이고 주님은 혼자이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 싸움은 시작부터 싸움이
될 수 없는 유다인들의 판정승 같게 보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수의 힘을 몰아부쳐 주님을 ‘하느님을 모독 하는 자’로 몰고 가고
‘백성을 선동하는 자’로 사람들을 각인 시키기 바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무고하게 주님을 일방적으로 죄인으로 몰고 가지만 사실은 주님께는
하느님이 편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표면으로는 다수의 유대인들이 주님을 우세한 것 같지만 내면으로는 하느님께서
편을 드시는 주님의 판전승인 셈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죽음으로 부치지만 내용으로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하는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요한 5,31-32)

주님께서는 다수의 백성들이 잘못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42-43절)

그들은 성경을 놓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성경을 잘못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당신을 증언해주는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당신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그들을 향해 맞 수를 두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뇌도 깊습니다.

사람은 자신에 대해 고발하거나 불리한 증언을 하면 그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때로는
관계마저 소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지니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는 분이신 것을 광야에서 백성들과 지내실 때 이미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시면서도 재미 있는 표현을 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 32,9-10)

모세가 하느님을 말리며 애원합니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싶게 진노를 거두십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호소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11절)

모세는 하느님께서 기껏 광야로 백성을 불러 내 놓고 다 해치우시면 ‘이집트 인들이
뭐라고 하겠느냐?’는 이유를 대며 하느님께서 진노를 푸시고 재앙을 거두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로가 크시더라도 모세의 애절한 청을 거두지 않으시고
받아들이십니다.

광야에서의 하느님 모습이 예수님 안에서 재현됩니다. 유다인들이 비록 목이 뻣뻣하고
독선으로 주님을 비방하지만 주님께서도 보복이 아닌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십니다.

큰 사랑이 아니고서야 가능할 수 없는 모습이지요. 우리도 내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심을 수 있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