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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성 주간 월요일 / 정인준 신부님 ~

4월 14일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7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친분에 대해서 복음서는 많은 이야기를 전하지 않은데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그의 오라버니 라자로와의 관계는 여러차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베푸는 내용입니다. 마르타는 시중을 들도 라자로는
식탁에서 손님들 틈에 끼여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리는 것입니다

. 순 나르드 향유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희귀해서 금처럼 값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소중한 것을 아끼지 않고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립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 부근의 베타니아의 갈릴래아 호수 서쪽 연안에 위치한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와 동일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에 대한 논란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7마귀를 쫒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자신을 구해주신
예수님을 특별히 감사하고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베타니아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순 나르드 향유를 바르며 눈물을 흘립니다.

초대 가톨릭에서조차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베타니아에 있는 마리아를 동일인물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바뀌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베타니아 출신의 마리아와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가
서로 다르거나 아니면 서로 동일 인물일 수 있는데 여전히 논라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도들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으로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도망 갔지만 그녀와 몇 몇 여인들은 주님의 무덤까지 가는 모습을 복음서는 전해 주고
있습니다.

베타니아의 마리아가 막달레나인지는 밝히기가 어렵지만 주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은 값진
향료를 서슴 없이 내어 놓은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 자신도 몰랐을 말씀을 주님께서 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7-8)

이 말씀은 유다 이스카리옷이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5절)에 대한 불평에 대한 대답이셨습니다.

그러난 복음서 저자는 그가 진정으로 가난한이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서 돈을 가로채곤 하는 도둑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대접에 대해서 이처럼 허용한 것은 성경저자도 표현 했듯이 장차 당신의
장례 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에게 닥칠 죽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가치관이나 자신의 신앙에 치우치다보면 이웃을 상하게 하거나 배타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그 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인데
수석사제들은 라자로 마저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소문을 듣고 라자로를 보려고 몰려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시며 베타니아에서 당신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십니다.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은 기쁨에 차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고뇌하는 삶일 것입니다. 주님께 초대를 받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맞으시는 것처럼 신앙인도 자신의 삶에서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잔치에 참여하며 이미 당신의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시는 것처럼 현실에 참여하면서
마음은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실의 어두움이나 갈등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주저 앉지 않는 용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용기는 삶의 그림자에서 오는 고통과 혼란도 담고 있습니다.

성주간의 첫 날을 맞으며 마리아가 아낌 없이 값진 순 나르드 향을 주님의 발에 부었듯이
우리도 우리의 사랑과 정성을 주님께 바치며 그 수난에 참여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