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란치스코성인의 꿈과희망

[스크랩] 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 (5) 책머리에

 

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 (5) 책머리에

 
5. 제1생애와 제2생애,제3생애가 처했던 운명
시간이 흘러 성 보나벤뚜라가 총봉사자가 되었을 때에도 토마스 첼라노의 저서들은 그대로 있었다. 이외에도 몇 편의 짧은 전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예를 들면 첼라노의 성무일도용 전기와 제1 생애를 기초로 하는 율리아노 스페이어의 짤막한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 도미니꼬회 회원인 바르톨로메오의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 그리고 헨리 아브란취의 산문시로 되어 있는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 등이다. 
이러한 단편들은 그 나름대로 제 몫을 하고 있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에 관한 정확한 것이 못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실 토마스 첼라노의 세 권의 책과 여타의 작품들 역시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로서 완벽한 것은 못된다. 그것들을 함께 
모아 놓아도 단일한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전기들은 결과적으로 후대에 창설자의 생애와 행적에 혼란을 가져오
는 온상이 되었고, 성 프란치스꼬를 있는 그대로 알아내는 데에 어려움을 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형제회의 장상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적당한 시기에 조처를 취했다. 
1260년에 나르본에서 총회가 개최되었고, 당시의 봉사자였던 성 보나벤뚜라는 형제들로부터 현존하는 전기물들을 대신할 만한 성인의 
객관성있는 생애를 집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성 보나벤뚜라는 이러한 청탁에 대해 성 프란치스꼬 대전기 서론에서, 총회에서 계속해서 
요구해 오지 않았더라면 자기로서는 성인의 생애를 쓸 생각이 없었고, 또한 자기는 그만한 자격과 능력도 없는 지라 집필을 거절했었노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보나벤뚜라는 총회의 청탁을 수락하여 1262년(혹 1263년)에 복되신 프란치스꼬의 생애를 탈고한다. 과락키 편집자들은 1263년 
삐사 총회에서 이 전기가 받아들여졌고, 이어서 34권을 복사하여 각 관구장들에게 배부하였다고 한다. 
3년 후 1266년 빠리 총회에서 다시 새 전기에 관한 토론이 있었고, “과거에 있었던 성 프란치스꼬의 모든 전기물들은 없애도록 한다”라고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사항은 외부에 퍼져 있는 전기물에도 해당된다고 결정하였다. 그후 보나벤뚜라 총봉사자가 쓴 이 전기는 그것이 
성 프란치스꼬의 측근자들의 입을 통하여 들은 것을 직접 옮겼다는 이유로 성 프란치스꼬 전기의 표준판이 되었다. 
어떤 동기가 이러한 결정 뒤에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토마스 첼라노의 작품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후 오랜 기간을 
그의 작품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차츰 필사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제1 생애는 모두 합해서 20개의 필사본들이 발견되었고, 
완벽한 것은 그 중에 다섯 개였으며, 네 개는 거의 완전한 상태였다. 이들 필사본 중에 여덟 개가 씨토 수도원에서 발견되었고, 세 개가 
분도 수도원에서 발견되었으며, 한 개만이 프란치스꼬회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씨토회에서 필사본들이 발견된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안되는 것은, 1259년에 성 보나벤뚜라의 요구로 씨토회 회원들이 그들의 총회에서 성 프란치스꼬의 축일을 전 씨토회에 받아들였고, 
성 보나벤뚜라가 그들에게 제1 생애의 복사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들의 여러 수도원을 위해서 여러 권을 복사하였고, 또 이렇게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프란치스꼬회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빠리 총회의 결정사항에 하등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도회 
회원들도 제1 생애를 그들의 전례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제2 생애와 기적 모음집은 제1 생애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고작 제2 생애
의 완벽한 복사판은 두 개 있을 정도였고, 기적 모음집은 한 개뿐이다.
18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토마스 첼라노의 작품들이 여러 종류 나왔다. 1768년에 예수회의 꼰스딴띤 쑤이스겐에 의하여 성인들의 행적
이라는 제목으로 제1 생애가 처음 출판되었고, 1806년에 제1 생애와 제2 생애를 한데 묶어 꼰벤뚜알의 쓰떼판 리날디 형제가 출판하였
으며, 1904년에 에드워드 엘렌꼰이 더 좋은 판을 내었으나, 가장 좋은 판은 1926년 성 보나벤뚜라 연구소의 프란치스꼬회 회원인 과락키 
편집 자들이 펴낸 것이다(AD CLARAS AQUAS, FLORENTIAE-QUARACCHI A PP. COLLEGII S. BONAVENTURAE). 
이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사랑과 사랑과 평화의샘 http://cafe.daum.net/lcg420
출처 : 첼라노의 프란치스코 전기 (5) 책머리에
글쓴이 : jeosahp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