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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관련 내용

세째주, 첫째날 가소성이 좋은 진흙

셋째 주, 첫째 날

 

가소성(可塑性)이 좋은 진흙


예레미야 18,1-6

야훼께서 나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는 곧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너에게 일러 줄 말이 있다.” 말씀대로 옹기장이 집에 내려가 보았더니, 옹기장이는 마침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옹기장이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내다가 제대로 안 되면 그 흙으로 다른 그릇을 다시 빚는 것이었다.

 

마침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왔다.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 달렸듯이 너희 이스라엘 가문이 내 손에 달린 줄 모르느냐? 이스라엘 가문아, 내가 이 옹기장이만큼 너희를 주무르지 못할 것 같으냐? 야훼가 하는 말이다…….”



해설

가장 오래된 수공업 가운데 하나는 옹기 만드는 것으로, 수천 년 전 최초의 원시인들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옹기는 원시인들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유일한 증거물일 때가 많다. 옹기는 음식을 준비하거나 저장하는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이야기-그들의 일상생활과 축제 행사들, 투쟁과 신앙-를 화력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예레미야는 평범한 일상 체험을 끌어들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심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예레미야는 옹기장이 집을 찾아가 진흙을 가지고 빚고 또 빚으며 작업을 하고 있는 옹기장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옹기장이를 하느님에 비유하고 이스라엘을 진흙에 비유하고 있다.

진흙의 질에 따라, 마무리된 그릇의 아름다움이 좌우된다. 진흙이 불순하면 예술가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경우가 이와 같다고 말한다.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서 가소성을 갖게 될 때에야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며 협조할 때에야 하느님께서는 자유롭게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만드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질 때 곁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결정하고 계획하고 선택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우리는 동업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만든다. 예술가와 진흙이 함께 역동적인 창조의 관계를 가지듯이, 하느님과 당신 백성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인간적인 각도에서 표현하는 기쁨을 함께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의 얼굴 모습을 통하여 사랑스러운 팔 다리와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어디서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기도안내 : 옹기장이의 손

매일기도 양식 :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구하는 은총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은총, 그리고 나 자신의 연야함과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 매여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기도방법 :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관상] 참조.

나 자신을 진흙으로 상상한다.

나는 무슨 색깔의 진흙인가? 빨간색인가 회색인가 노란색인가?

나의 농도는 어떠한가? 메말랐는가 부드러운가 축축한가?. 

옹기장이이신 하느님의 손을 본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를 선택하시고 준비하셨으며 정화시키시고 불순물과 기포들을 제거해 주셨는지 상기한다.

옹기장이이신 하느님께 주의를 집중한다. 그분은 나를 어떤 그릇으로 빚으실까? 컵인가 꽃병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나의 삶이 제 모습을 갖추어 감에 따라 하느님의 의도와 나의 소망,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이 역동적인 긴장관게를 형성한다.

나의 그릇 - 나, 나의 자아 - 은 하느님의 얼굴과 사랑과 창조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주님의 기도로 기도를 마친다.


기도 후 반성

이 기도 중에 알게 된 모든 느낌, 체험 또는 깨달음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