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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셋째 주, 넷째 날] 사랑의 언어

셋째 주, 넷째 날

사랑의 언어


시편 19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 줍니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신나게 치닫는 용사와 같이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고

그 뜨거움을 벗어날 자 없사옵니다.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 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 준다.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욱 달다.


당신 종이 그 말씀으로 깨우침받고

그대로 살면 후한 상을 받겠거늘

뉘 있어 제 허물을 다 알리이까?

모르고 짓는 죄일랑 말끔히 씻어 주소서.

일부러 범죄할까, 이 몸 막아 주시고

그 손아귀에 잡힐까, 날 지켜 주소서.

그제야 이 몸은 대역죄 씻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리이다.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해설

자신이 방금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것처럼 상상해 보라. 그 나라 말을 모르기 때문에 방향을 물어 볼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걸어 오는 말도 이해하지를 못한다. 맥이 풀리고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어렵게 고생해서 마침내 내가 묵을 호텔방에 도착하여 생각해 보니 말로 하지 않고서도 의사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의사교환은 미소나, 어깨를 으쓱 올리는 몸짓이나,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등의 별난 여러 가지 표현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답답함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환대해주고 길 안내를 해주었으며, 이해해 주고 그러한 상황에 대해 서로 웃으면서 기분을 풀었음을 느꼈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 안전감마저 느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 볼 때 언어란 말이나 글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시편 19에서 시인은 하느님의 계시도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우주란 하느님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표시다. 자연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며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 이러한 ‘사랑의 언어’는 국적이나 교육, 지위,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쓸 수 있다.

 

자연이란 보편적인 언어이다. 자연은 하느님의 사랑을 촉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실제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말에 귀기울일 때 우리의 참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되고 방향감각을 발견하고 자아 집착에서 벗어남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 안에서 우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7절에서 시편은 하느님의 법을 이야기한다. 히브리인 들이 볼 때 율법이나 토라(Torah)는 고립된 법규나 법령이 아니고, 구약성서 모세오경의 설화를 통해 계시된 것처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부르시는 초대인 것이다. 이 설화들은 창조와 죄와 치유와 하느님께서 히브리 백성들을 특별히 선택하신 점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설화들은 하느님의 법령이 당신 사랑의 선포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 자신의 역사 속에서-우리의 창조, 우리 죄, 우리의 치유, 하느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선택하심-하느님은 계속 당신 말씀, 즉 사랑의 율법을 말씀하신다.

 

우리가 실제적인 우리의 자아 전체-우리의 장점과 약점, 우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를 포용할 때 보다 깊은 전체적인 실제를 접하게 된다. 우리가 자아와 하나가 될 때 창조주와 하나가 되며 모든 피조물과 하나가 된다.

우리가 완전히 자아를 포기할 때에야 참된 기쁨을 느끼게 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



기도안내 : 장미

매일기도 양식 :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구하는 은총

놀라움을 느낄 수 있는 은총, 그리고 나 자신의 연야함과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 매여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기도방법 :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관상] 참조.

“장미 덩굴을 상상하시오. 그 뿌리와 줄기, 잎, 꼭대기에 달려 있는 장미 봉오리까지. 그 꽃봉오리는 닫혀 있으며 초록색 꽃받침들로 싸여 있습니다. 모든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그려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상상하십시오.

 

자, 이제 꽃받침들이 열리고 젖혀지면서 부드럽고 가냘프며 아직도 닫혀 있는 그 속의 꽃잎들을 상상하십시오.

이제 꽃잎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도 일어나는 개화(開花)를 또한 느낍니다.

당신은 당신 안에서 뭔가 열리고 있으며 밝히 드러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장미를 계속 생생하게 그려보면서, 당신은 장미의 리듬이 곧 당신의 리듬이며 장미의 개화가 곧 당신의 개화임을 느낍니다. 장미가 피어나서 빛과 공기를 쐬며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봅니다.

당신은 장미의 향기를 맡으며 당신의 존재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이제 그 장미의 한가운데를 바라보십시오. 그 곳은 그 생명이 가장 강렬한 곳입니다. 거기에 한 영상이 떠오르도록 하십시오. 그 영상은 당신의 삶 속에서 지금 바로 그러나고자 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의미 깊으며, 가장 창조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그 영상이 무엇이 되건 상관없습니다. 억지로 노력하거나 생각하려 하지 말고, 단지 자연스럽게 그 영상이 떠오르게 하십시오.

얼마 동안 이 영상과 함께 머물며 그 영상의 특성을 흡수하십시오.

 

그 영상은 당신에게 어떤 메시지를-언어적이건 비(非)언어적이건-전할지도 모릅니다.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하늘이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인다.”면 피조물 하나하나도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한 송이의 장미도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기도시간이 끝날 때 당신 안에 있는 장미로 하여금 위의 시편을 노래하게 하시오.

주님의 기도로 기도를 마친다.


기도 후 반성

이 기도 중에 알게 된 모든 느낌, 체험 또는 깨달음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출처 : [셋째 주, 넷째 날] 사랑의 언어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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