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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스크랩] 제8장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

 

 

 

제8장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

 

 

   이번 장에서는 앞 장의 주제에 이어지는 내용을 계속 살펴보겠다.  만약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게 될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순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이 순종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내적인 태도이고 또 하나는 외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둘 중에서는 내적인 순종이 더 중요하다. 즉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통해 하느님에게 봉사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가는 것이나 기도를 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의 활동, 식사, 일, 공부, 휴식, 운동, 잡담, 그 외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청소를 할 때에도 단순히 자신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서만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에게 봉사하려고 청소를 한다면 청소를 통해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돈을 교회에 기부한다 하더라고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외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하느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마음, 즉 자신을 위한 마음과 하느님을 위한 마음이 있다.  하느님을 위해서 할 때, 다시 말하면 하느님에게 순종할 때 일상생활이 성화될 것이다.  이런 태도를 '순수한 지향'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다며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나 병에 걸렸을 때 겸손과 인내심을 가지고 하느님에게 봉헌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대단히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순종이란 첫째로외적인 행위가 아니고 내적인 태도인 것이다.

 

   둘째로 외적인 선택과 행위로서의 순종이다.  즉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라 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취직할 때 '가'라는 회사를 선택할지 '나'라는 회사를 선택할지, 또는 선물을 '갑'에게 해야 할지 '을'에게 해야 할지와 같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그런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쉬울 것이고, 어떤 경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비록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선택할 때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따라 선택한다.  하느님을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자기만족, 체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좋아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려운 일이 반드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즐거운 일이나 기쁜 일이 하느님의 뜻일 경우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이 아닌 하느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의해 순종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좌우된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공동체와 순종의 관계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상, 공동체에 대한 순종이 반드시 요구된다. 물론 모든 결정에 대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라엑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단 결종된 것에 대해서는 비록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따르는 태도가 필요하다.  예외적으로, 그 결정이 분명히 비도덕적이라든가 반사회적인 경우(예를 들면 옴진리교 같이 사람을 주기이는 경우)에는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 그것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통은 그 결정이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믿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느님이 공동체를 통해 이루려고 하시는 것은 개인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당 공동체에 관해서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경우에는 침묵 중에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으 성인들은 그렇게 하였다. 자신의 작은 생각을 포기하고 우리를 키워 준 어머니인 교회를 자신의 부모처럼 존경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힘쓰자.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일상생활 안에서 당신이 하느님에게 순종한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감? 반대로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

   (2) 하느님에게 순종하려고 할 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그럴 때 당신은 어던 태도를 취하는가?

   (3) 당신은 공동체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어려운가, 쉬운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묵상 말씀(사도 5, 27-32)

   그들이 사도들을 의회에 데려다 세워 놓자 대사제가 이렇게 심문하였다. "예수의 이름으로는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는데도 당신들은 어쩌자고 온 예루살렘에다 당신네 교를 퍼뜨리는 거요?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 씌울 작정이요?"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복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고 하느님게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셔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출처 : 제8장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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