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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영성이야기

[스크랩] 제11장 죄에 관하여

 

     

     영성생활의 길잡이

 

제11장  죄에 관하여

 

 

   이번에는 죄에 관하여 살펴보겠다 하지만 '죄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죄를 알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보통 영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죄의식은 커진다.  왜냐하면 죄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죄가 자신의 본성이 되어 버려서 죄가 자신에게 좋은 것이 되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  이것에 반해 성성(聖性)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본성이 맑아지기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매우 고통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죄인이고, 반대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죄인이 아니다. 

 

   죄의식에도 건전한 의식과 불건전한 의식이 있다.  그 차이를 통회와 후회의 차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후회란 자신이 이것도 할 수 없었고 저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을까 하고 과거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강하게 비난한다.  그렇게 어리석은 내가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후회에는 주로 분노와 비탄의 감정이 있다.  이에 반해 통회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죄가 많은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 아픔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을 더 강하게 의식하는 태도이다.  하느님의 과분한 사랑 앞에 자신이 얼마나 작고 죄가 많은 자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때 신비스럽게 참회와 감사의 마음이 교차하는 듯한, 슬픔과 위로가 섞인 독특한 삼정이 발생한다.  그때 흘리는 눈물은 그 사람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준다. 통회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후회와 특별히 다른 점이다.

 

   후회만 하는 사람의 문제점은 늘 자신이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업적과 일을 자랑하는 사람은 후회만 맛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과 후회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성공하면 교만하게 되고 실패하면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후회하기 때문이다.  교만에도, 후회에도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통회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열고 그 사랑을 더욱 더 깊이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자신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행운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 체력, 성격, 인간관계, 일상생활의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런데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면, 어느 때 갑자기 자신이 죄가 많다는 것을 하느님이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의 말씀으로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9루가 5,8).  그는 하느님의 위대한 힘, 즉 하느님 은총의 굉장함에 압도되었을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사랑을 만날 때 자신의 추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주위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즉 주위 사람의 마음과 선의에 얼마나 상처를 입혔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안에 큰 조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자주 잇다.  이 숨겨진 죄라는 것은 실제로 무서운 것이다.  자신이 죄 중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가장 비천한 것이다.  옴진리교 신자들은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그들은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자신들이 큰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도 많든 적든 맹목적인 면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자주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위 사람들의 충고와 비판을 잘 귀 기울여 듣자.  우리 자신보다도 주위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죄를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요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라고 생각되어도 거기에는 자신이 배울 만한 진리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겸손함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영성 생활의 진보에 있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자주 바라보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아무리 해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사람이 있다.  또한 그 사람의 결점에 대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고나 그 사람의 버릇을 아무리 해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인간관계를 잘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즉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성격이 바로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죄가 그 사람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지닌 자신이 싫어하는 점은 자기 죄에 대한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죄는 참으로 쉽게 알아차리는 데 반해 자신의 죄는 왜 알아차리지 못할까?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잇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  예수의 이 말씀은 진리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정말 모른다. 다른 사람의 죄를 책하기 전에 나의 거울인 그 사람을 자주 보고 자신의 죄를 반성하자.

 

   앞 장에서 기술했듯이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당신은 언제 자신이 죄가 많다고 느꼈는가?

(2) 그 죄를 하느님은 어떻게 보고 느끼실까?

(3) 그 죄에 관하여 당신은 회개하고 싶어 하는가? 회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묵상 말씀(루가 5,1-1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게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둔 배 두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빵에서 조금 떼어 놓게 하신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교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하나후사 류이치로 지음 - 정구현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사-

 

 

 

 

출처 : 제11장 죄에 관하여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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