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2. 최필공(崔必恭) 토마스와 有力한 교우들
① 우리는 앞에서, 길거리와 광장에서 신앙(信仰)을 설교(說敎)하기를 그치지 않은 저 용감한 사람, 최필공(最必恭) 토마스의 입교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p.26참조). 그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어서 모면할 수가 없었다. 형조(刑曹)에 끌려 나가 그의 종교(宗敎)에 대하여 질문(質問)을 받자, 그는 과감하게 대답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천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천주께 대한 본분을 다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 대답을 한 뒤 그에게 가하여진 형벌(刑罰)도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항상 한결같은 목소리로 같은 신앙고백(信仰告白)을 되풀이하여 마지않았는데, 어떻게나 순진(純眞)하고 솔직(率直)하고 확신(確信)있게 말하였던지, 구경꾼들이 모두 감탄(感歎)할 지경이었다.
② 임금 자신도 그런 감정을 느끼어, 최필공(崔必恭)에게 대한 동정심이 생겨 그의 목숨을 보존(保存)하여 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王은 그를 달래어 몇 마디 굴복(屈伏)하는 말을 얻어내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하라고 명령하였다.
③ 간계(奸計), 달램, 재산(財産)의 약속 등 모든 것이 다 동원되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王의 명령으로 崔(必恭) 토마스의 늙은 아버지와 형이 불려와, 눈물과 간청으로 이 용감(勇敢)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하였다. 이때 崔(必恭) 토마스는 크게 감동되었고, 인성(人性)의 모든 감정(感情)이 그의 마음속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굴복(屈伏)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는 참 임금시오 참 아버지이신 天主를 배반(背反)할 결심을 할 수 없다고 되풀이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④ 이 마지막 시도가 실패하자, 이제는 법에 따른 준엄(俊嚴)한 판결(判決)을 선고 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에는 대신(臺臣) 자신도 동정심(同情心)이 일어, 최필공(崔必恭)이 시키는 대로 순종(順從)하였다고 왕에게 아뢰었고, 王은 좋은 분별력(分別力)과 순종(順從)을 매우 칭찬 하며 곧 그에게 역관(譯官) 집안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자리를 주게 하였다. 또 다른 기회에 왕은 최필공(崔必恭)을 좋은 심지로 돌아오게 한 것을 다시 기뻐하였다.
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필공(崔必恭)이 실제로 두려움에 젖었는지, 또는 사람들이 그가 하였다고 거짓 꾸며대는 말들에 대하여 즉시 강력하게 항변(抗辯)하지 않는 심약(心弱)만을 가졌던 것인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어떻든 그는 곧 자기 罪를 몹시 슬퍼하고 자기의 첫 번 열심을 되찾아, 그 어느 때보다도 도 열성적(熱誠的)으로 천주교신자의 모든 본분(本分)을 지켜 갔다. 언젠가 우리는 그의 이름을 순교자(殉敎者)의 명단(名單)에서 보게 될 것이다.
⑥ 같은 시기에 체포(逮捕)된 다른 천주교신자들도 많은 배교(背敎)로 박해를 모면 하였다. 그들 중 중요한 인물로는 최인철(崔仁喆), 정인혁(鄭仁赫), 손경윤(孫景允), 양덕윤(梁德潤), 최인길(崔仁吉), 최필제(崔必悌)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나중에 순교(殉敎)하는 행복(幸福)을 얻었다.
-샤를르 달레 神父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