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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신부님의 천주교회역사

[스크랩] 강완숙 골룸바의 순교 -2

 

 

 

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⑧ 그의 친구 중 거의 모두가 그의 본을 따랐다. 여주(驪州)읍에서 참수(斬首)당하는 것을

    본 바가 있는 영광스러운 순교자(殉敎者)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와 원경도(元景道)

    요한도 그들 중에 있었다. 강이천(姜彛天)만이 믿지 않고,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깊숙

    이 자기의 야심적(野心的)인 꿈과 환상적(幻想的)인 연구에 빠져 들어갔다.

       두 달이 겨우 지났을까 말까 한데, 이자와 그의 동료(同僚)들의 계획이 드러나, 정부

    (政府)에서는 그들의 행동에서「반역의 경향과 백성들 가운데 소요를 일으킬 위험

   을 발견한다」고 생각하고서, 그들을 체포(逮捕)하여 법정(法廷)에 서게 하였다. 때는

    1797년이었다.

       김건순(金健淳) 요사팟도 강이천(姜彛天)과 전에 교제를 한 탓으로 자연 관련(關聯)

    이 있게 되었다. 다행이 그의 훌륭한 자질(資質)과 정직(正直)이 이미 왕에게 알려져 있

    어서, 왕은 그를 전적으로 존중(尊重)하여 그를 보호(保護)한 덕분에, 이 사건(事件)에

    연루(連累)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⑨ 조금 후에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은 신부(神父)에게서 성세(聖洗)를 받았고, 그로 인하

    여 그의 열심은 훨씬 더하여졌다. 그는 자기가 천주교인(天主敎人)임을 공공연하게 드

    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친척(親戚)과 친구(親舊)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권고하며, 온갖 기회(機會)를 이용하여 복음(福音)을 전파(傳播)하기를 마지

    않았다. 여주(驪州)고을과 그 근방에서 많은 외교인(外敎人)들이 신앙(信仰)의 은혜(恩

    惠)를 얻은 것은, 하느님 다음에 그의 덕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천주교를 신봉(信奉)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보며, 온갖 노

    력(努力)을 기울여 거기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였다. 여러 해 동안 김건순(金健淳) 요

    사팟은 매우 괴로운 가정(家庭)의 박해(迫害)를 줄곧 당해야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어

    려움을 이기고, 자기의 본분(本分)을 충실히 지켜나갔다.

       그는 정약용(丁若鏞) 요한이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ꡐ배교문에 서명을 하여 배반

   하였다ꡑ는 소식을 듣고서 매우 슬퍼하며, 그로 인하여 많은 고통(苦痛)을 당함을 나타

    냈으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⑩ 비록 그의 출생(出生)과 사회적 지위(社會的 地位) 때문에, 세속(世俗)과 조정(朝廷)의

    많은 일에 관련되었었으나, 천주교회의 일을 지도(指導)하는 데 큰 몫은 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갑자기 권력(權力)을 잡은 자기 당파(黨派)의 양반들의 법석이 박해(迫害)를

    준비(準備)하고 예고(豫告)할 때,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이 천주교인들과 약간 소원(疎

    遠)하였음을 볼 수도 있다.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와 협력하여, 천주교에 대한 완전하고 체계적(體系的)

    인 저서(著書)를 편찬하는 일을 한 것은 아마 이 때인 것 같다. 그들이 저서를 완성(完

    成)하지 못하고, 또 교우(敎友)들이 그 한 부분도 건지지 못하였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다.


* 혈세(血洗)로 빛나는 김백순(金伯淳)


①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의 친척(親戚) 여럿이 그의 승리(勝利)를

    나누어 가졌다. 그들 중 가장 알려진 사람은 김백순(金伯淳)이었는데, 그는 아직 예비

    신자(豫備信者)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기록에 본명(本名)이 없다. 그는 몇 촌간인지는

    모르지만,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의 종형(從兄)인데, 서울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을 모면하고 영예(榮譽)를 얻으려고 공직(公職)의 길을 헤쳐 나갈 생각밖에

    는 없었다.


② 1636년에 정승(政丞)이었던 그의 조상(祖上) 중의 한 사람이, 만주인들이 조선(朝鮮)과

    중국(中國)을 갈라놓는 강 근처에 이르렀을 때, 오랑캐들에게 굴복(屈伏)하기를 거부하

    고, 스스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나라와 임금께 바친 이 충성(忠誠)으로 인하여, 그에게는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그

    후손(後孫)들에게도 정문(旌門)을 세울 허가(許可)를 주었는데, 이 두가지 영예(榮譽)

    는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후손(後孫)들에게 빨리 출세(出世)할 수 있는 칭호(稱號)가

    된다.

       그러므로 김백순(金伯淳)은 순전히 야심적(야심적)인 견지에서 글공부에 전념(專念)

    하였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자비(慈悲)의 계획(計劃)을 가지고 계시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차차 참된 영광(榮光)과 참된 행복(幸福)을 원하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다.


③ 거기에 이르기 위하여 그는 성현(聖賢)들의 철학서(哲學書)를 읽기 시작하였으나, 그것

    들이 모호하고 모순(矛盾)되어 그의 마음에 의심(疑心)이 나게 되었고, 그것들을 전적

    으로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노자(老子)의 글과 다른 글들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주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서, 그는 새로운 도리(道理)와 새로운 학설(學說)을 만들어, 곧 몇몇 친구들에게 설명

    (說明)하였다. 그러자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ꡒ자네의 말은 매우 이상한데. 자네는 아마 그 모든 것을 서교(西敎)에서 따

    왔지?ꡓ

     이 지적(指摘)은 김백순(金伯淳)에게 큰 충격(衝擊)을 주었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

     였다.

     ꡒ우리의 지능을 초월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가 그것이 서교(西敎)에서 왔다

     고 말을 하니, 그 종교에는 무엇인가 아주 위대하고 비상한 것이 틀림없

     다.ꡓ

     따라서 그는 곧 천주교인(天主敎人)들과 상종(相從)하기 시작했고, 2년 동안 그들의

     교리(敎理)를 검토(檢討)하고 토론(討論)하며, 깊이 연구(硏究)한 후에, 확신(確信)을

     가졌다고 굳게 믿고, 온 마음을 바쳐 천주교(天主敎)가 명하는 모든 본분(本分)을  충

     실히 지켰다.


④ 그에게서 배우고 권고(勸告)를 받은 그의 어머니도 천주교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속이

    좁고 뻣뻣하고 야심(野心)이 많아, 자기 남편의 영예(榮譽)를 항상 갈망(渴望)하여 오

    던 그의 아내는,  저기의 희망(希望)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하여

    온갖 비난(非難)과 욕설(辱說)을 퍼부었다.


⑤ 김백순(金伯淳)은 자기가 입교(入敎)한 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친척(親戚)

    중의 한 사람이 어느 날 천주교(天主敎)에 대해서 질문(質問)을 하자 그는 큰소리로,

    ꡒ이것은 침 도리이고, 위대한 도리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따라야 하니, 나

    와 같이 하시오.ꡓ

   하고 대답하였다.

      또 하루는 외숙부(外叔父)가 그를 보러 와서, 온갖 방법(方法)을 써서 그를 유혹(誘

    惑)하려다가 말을 듣도록 할 수가 없게 되자,

    ꡒ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ꡓ

  하고 말하였다. 이에 김백순(金伯淳)은

    ꡒ숙부와 의절(의절)을 할지언정 저는 내 천주와 의절은 못하겠습니다.ꡓ

   하고 조용히 대답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친구들은 그와는 상종(相從)을 끊자고 서로논의(論議)하였고, 그의 친

    척(親戚)들은 그를 집안에서 내쫓기로 결정(決定)하였다.

       이 용감(勇敢)한 신입교우(新入敎友)는 이 모든 것을 무관심(無關心)하게 지켜보며,

    ꡒ내가 천주를 안 뒤로는 내 마음의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으니, 내 마음은

    마치 산과 같다.ꡓ

   하고만 말하였다.


⑤ 1801년 봄에 그는 한 배교자(背敎者)의 밀고(密告)로 붙잡혀 옥에 갇혔다. 그의 신문내

    용(訊問內容)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결안(結案)을 믿는다면, 형벌(刑罰)로

    인하여 그는 잠시 심약(心弱)한 말을 몇 마디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말을

    철회(撤回)하고, 보기 드문 용기(勇氣)와 굳건함을 끝까지 나타냈다.

      그의 종제 김건순(金健淳) 요사팟과 동시에 사형(死刑)이 언도(言渡)되어 처형(處刑)

    되었는데,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그가 옥에서 성세(聖洗)를 받았다는 말은 없다. 그러

    니까 혈세(血洗)가 그를 교우로 만들었고, 그에게 개선(凱旋)의 교회(敎會)로 들어갈

    권리(權利)를 준 것이다.


 

-샤를르 달레 神父 著-

 

 

출처 : 강완숙 골룸바의 순교 -2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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