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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신부님의 천주교회역사

[스크랩] 강완숙 골룸바의 순교 - 4

 

 

 

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3. 특은(特恩)을 받은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


※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와 같이 참수(斬首)를 당한 부인(婦人)들은 강경복(姜景福), 문

    영인(文榮仁), 김연이(金連伊) 및 한신애(韓信愛)였다. 이 복된 순교자(殉敎者)들이 누

    구인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조선(朝鮮)에서는 여자(女子)들은 자기의 본 이름이 없고,

    정부(政府)의 기록(記錄)에도 그들의 성(姓)은 기록하지 않고 순전히 재판(裁判)을 위

    하여 그들에게 지어준 이름만으로 그들을 지칭(指稱)했기 때문인데, 이런 일은 사형선

    고(死刑宣告)를 받거나 부끄러운 형벌(刑罰)에 처해지는 사람들의 경우에 흔히 있는 일

    이었다.  

      이 여인(女人)들은 궁녀(宮女),즉 궁에서 왕비(王妃)와 공주(公主)들의 시중을 들던

   여인들이었다. 그들의 결안(結案)은 거의 비슷한데, 주문모(周文謨) 신부(神父)에게서

   배워서 영세(領洗)를 하였다는 것과, 천주교(天主敎)의 일에 심부름꾼 노릇을 하였으며,

   추적(追跡)받는 교우(敎友)들을 여러 번 피신(避身)시키고, 상본(像本)과 책을 비롯해서

   천주교(天主敎)의 물건(物件)을 집에 숨겨두었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러 가지로 조사(調査)한 결과 그들 중의 하나가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라는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 거룩한 순교자(殉敎者)에 대하여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사항을 여

   기에 기록(紀錄)하고자 한다.



①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중인계층(中人階層)의 양가(良家)에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숙부(叔父)는 작은 벼슬을 하고 있었다. 다섯 딸 중의 셋째로 일곱살 밖에 되

    지 않았었는데, 궁녀(宮女)를 고르려고 관리들이 찾아왔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두 언니

    는 숨겨놓고,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나이가 어려 가택수색(家宅搜索)에서 빠져나

    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염려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궁에서 나온 사자(使者)들은 그녀를 보고난 후, 그녀의 조숙(早熟)한 총명(聰

    明)과 뛰어난 용모(容貌)를 보고 감탄하여, 그녀를 데리고 궁으로 갔다. 그리하여 그녀

    는 왕궁(王宮)에서 자랐다. 열다섯 살 때에 머리를 올렸고, 글씨를 매우 잘 썼으므로 문

    서작성(文書作成)하는 일을 맡겼다.


②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인(外敎人)이었으나, 어머니는 열심한 천주교인(天主敎人)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딸이 궁에 있어 영혼(靈魂)을 구하는 일을 거의 할 수 없음을 보고, 비

    탄(悲嘆)에 잠겨 있었다.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가 이따금씩 집에 오는 때면, 어머니와 언니들은 그녀에게

    천주교를 신봉(信奉)하라고 간곡히 권하였다. 그때마다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이

    렇게 대답하였다.

    ꡒ그렇게 할 수 있는 어머니와 언니들이나 잘 신봉하셔요. 나는 궁에 갇혀 있

     는 몸이라, 여러 가지 미신행사(迷信行事)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너무나도 어려워요. 내가 늙어 궁에서 나올 수 있게 되면 그때 신봉하겠어

     요.ꡓ


③ 궁녀(宮女)들은 저녁에 모여, 웃고 떠들고, 담배를 피우고 다과(茶菓))를 먹고 하는 것

    이 풍습(風習)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헤어져 물러갈 때에, 문영인(文榮仁) 비

    비안나는 별안간 머리를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이 정신(精神)이 혼미(昏迷)해져 의식(意

    識)을 잃고 쓰러졌다. 곧 그를 일으켜 세우고 온갖 응급치료(應急治療)를 다하였으나,

    병이 점점 더 중해지므로, 그녀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위험(危險)한 상태(狀態)를 보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입교(入敎)하라고 권하자,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도 그럴 마음이 있었으나 그때까지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오직 그녀의 신분(身分) 때문이었으므로, 쉽게 동의(同意)

    를 하고 성세(聖洗)를 받았다. 이튿날부터 그녀는 완전히 나아서, 즉시 기도문(祈禱文)

    과 천주교교리(天主敎敎理)를  부지런히 배우기 시작하였다.


④ 이 갑작스러운 완쾌가 이미 비상(非常)한 은혜(恩惠)였는데, 오래지 않아 그것이 하나

    의 명백(明白)한 기적(奇蹟)이 되었다. 날마다 혹은 이틀에 한 번씩 궁에서는 의사(醫

    師)를 보내고 하였으며, 여러 궁녀(궁녀)들이 남아서 그녀를 간호(看護)하는 일도 지주

    있었다.

       그녀기 성세(聖洗)를 받은 후부터는, 다른 때에는 언제나 병이 완전히 나아 있다가

   도, 궁에서 나온 사람이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의 한쪽 팔과 한

   쪽 다리가 뻣뻣하여지고, 죽은 것 같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침(鍼)을 수없이 맞고, 약도 굉장히 많이 먹어야만 했다. 그녀는 태연히

   침을 맞고, 약도 먹었다. 그런 후, 궁의 사람들이 나가기가 무섭게 그녀는 아무런 고통

   (苦痛)도 없이 다시일어나, 하느님께 감사(感謝)를 드리며,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였다.

  ꡒ아주 건강한 몸을 위해서 약을 많이도 허비(虛費)하고, 침도 쓸데없이 많이

   놓는구나.ꡓ


⑤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읽고 기도(祈禱)하는 데에만 전념(專念)하여, 죄의 그림자

    까지도 정성껏 피하여, 그녀의 열심의 명성(名聲)은 교우(敎友)들 중에 빠르게 펴졌다.

       그녀는 성인(聖人)들의 전기(傳記)를 읽고, 그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형리(刑吏)들에게 보여준 너그러움에 대하여 자주 말을 하고, 그들을 따라 순교(殉敎)

    하려는 원을 드러냈다.

       3년 동안 줄곧 의관(醫官)들에 의하여, 의술(醫術)의모든 치료방법(治療方法)이 베풀

    어졌으나, 마침내 그 이상한 병을 고칠 방법(方法)이 도무지 없는 것을 보고, 결국 궁녀

    (宮女)의 명단(名單)에서 그녀의 이름을 삭제(削除)하였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매월 지

    급되던 봉급도 그쳤다.


⑥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마음을 탁 놓고, 하느님의 그렇게도 분명한 보호(保護)에

    대해 깊은 감사(感謝)를 드리고, 그때부터는 자기의 본분(本分)을 다하며 천주교의 모

    든 덕행(德行)을 닦는데 전심(傳心)할 생각만 하였다.

       3년 후에 그녀는 회장(會長) 김「승정」의 어머니 김「섬아」수산나와 함께 주문모

    (周文謨) 신부의 시중을 들게 되어, 여러 해 동안을 모범적(模範的)인 헌신(獻身)과 효

    성(孝誠)으로 자기의 직책수행(職責遂行)을 다하였다.

       박해(迫害)가 일어나려고 하여 신부(神父)가 다른 곳으로 피시(避身)하려 하자, 문영

    인(文榮仁) 비비안나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와, 순교(殉敎)할 시기(時期)를 기다리고 있

    었는데, 자기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므로, 그녀는

    ꡒ천주께서 나를 원치 않으시는가?ꡓ

    하고 거듭 한탄을 하였다.


⑦ 하루는 김「섬아」수산나가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를 보러 왔다가, 여러 가지 기도문

    (祈禱文)을 적은 종이를 가지고 들어와서 방 자리 밑에 두었다가, 잊고서 그냥 돌아갔

    다.

       얼마 후에 포졸(捕卒)들이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의 집에 와서, 사방을 뒤져 보아

    도 수상한 물건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다가, 마침내 자리를 들춰 그 종이를 집어 들고

    서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에게 말하였다.

    ꡒ너도 천주교인이냐?ꡓ

   ꡒ확실히 천주교인입니다.ꡓ

     하고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는 서슴치 않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즉시 체포(逮捕)를 선언한 뒤에 빨리 가지고 재촉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교우

    동정녀(童貞女)는 성인(聖人)들의 모범(模範)을 생각하고, 포졸(捕卒)들에게 너그러움

    을 베풀고자 하여 다과(茶菓)를 대접하니, 그들은 몹시 기뻐하였다. 그런 다음 문영인

    (文榮仁) 비비안나는 어머니에게 하직(下直)을 고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위로(慰勞)를

    해드린 다음, 집을 떠나 포청(捕廳)으로 끌려갔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26세였다.

 

-샤를르 달레 神父 著-

 

 

출처 : 강완숙 골룸바의 순교 - 4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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