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天主敎會史
― 韓國天主敎會史에서 보여준 순교자들의 모습들 ―
2. 이순이(李順伊) 누갈다의 편지(1)
「어머니 보셔요.
㉠ 어머님, 제 신상(身上)에 일어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감회(感懷)도 깊은 중, 어머니를 생각하며 4년 전에 어머님
을 떠난 뒤로 제 마음속에 있는 감정(感情)을 알려드리려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릴 수 없으므로 몇 줄만 써
서 올립니 다.
비록 제가 죽을 처지(處地)에 놓여 있지만, 어머님은 너무 상심(傷心)하지 마시고, 천주의 자비로운 명령을 거
역하는 일 없이, 평온(平穩)하고 침착하게 그분의 뜻을 따르셔요. 제가 천주께로부터 물리침을 당하지 않는 은혜
(恩惠)를 받게 되면 그분께 이 은혜를 감사드리셔요.
제가 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절개(節槪)없는 계집애요 쓸 데 없는 자식에 불과 하겠지만, 특별한 은총(恩寵)으
로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다면, 한편으로는 어머님은 내가 정말로 딸 하나를 뱃속에 가졌었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일체(一切) 쓸데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어머님을 영원히 떠나 다시는 어머님께 효성(孝誠)을 다할 기회를 잃게 되는 날을 앞두고, 어찌 모든 인정(人情)
을 억제(抑制)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약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같이 지나가는 세월(歲月)은 길지 않다는
것을 저는 생각합니다. 어머님의 딸자식인 저는 이 길로 어머님께 천국(天國)과 영복(永福)의 문을 열어 드리러
가서, 미리부터 어머님을 위하여 영원한 기쁨의 값을 치르려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머지 않아 죽는다는
이 생각이 비록 인정(人情)으로는 슬프고 어렵기는 하지만, 곧 낙으로 변하고 아주 상쾌한 즐거움이 됩니다.
하기는 어머님도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요. 그러나 죽음을 앞둔 딸의 말을 기억(記憶)하시고, 자중(自重)하
시며, 덕행(德行)을 진심으로 닦으셔요. 제 모든 친척(親戚)의 영혼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영원히 뵈옵는 것을
보았으면 하는 이 간절한 원 말고, 지금 어떤 다른 원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
㉢ 그리고 내 동생들아, 어떻게들 지내고 있느냐? 많은 정다운 말도 아무런 소용(所用)이 없을 것이므로 너희들에게
두어 마디만 하겠다. 열렬한 사랑을 가져라. 그만큼 천주의 마음을 감동(感動)시키는 것은 없다. 그뿐 아니라, 모
든 소원(所願)이 성취되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고, 천주께 달린 것이다.
그리고 종들은 본분(本分)에 충실(充實)할 것이니, 그렇게 함으로써 한 집안 식구가 될 것이요, 작고 쓸데없는
자식이었던 그들이, 참 자식(子息)이 될 것이니, 나는 감히 그것을 천만 번 바라는 바이다.
㉣ 어머님, 너무 상심(傷心)하지 마시고 모든 걱정을 억제(抑制)하셔요. 이 세상을 꿈으로 보시고, 영원(永遠)을 어
머님의 본향(本鄕)으로 생각하시고, 늘 경계(警戒)를 개을리 하지 마셔요.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천주의 명령
을 따른 뒤에 어머님이 이 세상(世上)을 떠나실 때에는, 천하고 약한 자식인 제가 끝없는 행복(幸福)의 화관(花
冠)을 머리에 쓰고, 모든 천상의 기쁨이 넘치는 마음으로 어머님의 손을 잡아 영원(永遠)한 고향(故鄕)으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오라버니 가롤로(李景陶)가 서울에서 잡혀 용감하게 신앙(信仰)을 증거(證據)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
로 얼마나 큰 은총(恩寵)이며, 얼마나 큰 보호(保護)입니까? 어떻게 천주께 그 은혜(恩惠)를 다 감사할 수 있겠
습니까? 저는 어머님의 행복을 찬양(讚揚)합니다. 4년 전에 어머님 앞을 나온 저는, 제 마음의 모든 감정(感情)
을 알려 드릴 길이 없어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천주의 명령입니다. 천주께서 우리들을 어머님께 주셨다가 도로 거두시는데, 이 모든 것이 그분
의 섭리(攝理)로 조절(調節)되는 것이니, 그것을 너무 슬퍼하는 것은 교우(敎友)로서는 웃음을 사 마땅한 나약
(懦弱)이라 하겠습니다. 영원(永遠)한 세상에서는 저희가 모녀(母女)의 관계를 다시 맺고,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천만 번 감히 바랍니다.
㉤ 우리 새 언니, 너무 근심하지 마셔요. 오라버니가 돌아가신다면, 언니는 참말로 남편다운 남편(男便)을 만났다고
사람들이 말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언니가 순교자(殉敎者)의 아내가 된 것을 미리 축하해요. 우리가 이 세상에
서는 혈연(血緣)이나 혼인(婚姻)으로 맺어지고, 영원(永遠)의 나라에서는 어머니, 아들, 형제, 자매, 남편들이 같
은 지위(地位)에 놓여 영원(永遠)한 복을 누리게 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제가 죽은 뒤에도 저의 시
댁(媤宅)과 관계를 끊지 말고, 제가 시댁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셔요.
㉥ 제가 시집에 이르렀을 때에, 저의 모든 불안(不安)의 대상(對象)이고, 모든 날의 걱정이던 것에 대한 해결책을 쉽
게 얻었습니다. 남편과 아홉시에 함께 있게 되었는데, 열시에는 우리 둘이 동정(童貞)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그
로부터 4년 동안을 남매(男妹)와 같이 지냈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는 열 번 정도의 유혹(誘惑)을 받아, 하마터면 모든 것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간
구(懇求)한 보혈(寶血)의 공으로, 마귀(魔鬼)의 계략(計略)을 피했습니다. 이 말은 어머님이 저 때문에 걱정하실
까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이 종이쪽을 제 자신을 받아들이시듯 기쁘게 받아주셔요. 아무 것도 하기 전에 저의 생각과 저의 글을 이렇게 어
머님께 보내드리는 것은, 저로서는 매우 경솔한 짓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어머님의 불안(不安)을 흩어
드리기를 원하는 것이니, 거기에서 얼마간의 위로(慰勞)를 받으셔요.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神父)님이 계실 때에, 신부님은 제에게 온 집안 식구가 당하는 박해(迫害)를 자세
히 적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이르러 유문석(柳汶碩) 요한 편에 몇 가지의 글을 쓴 종이를 보내드
렸는데 어떻게 되었는지요?(이들 문헌은 하나도 발견된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일체(一切)의 근심과 불안(不安)을 누르시고,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되다는 것을 생
각하셔요. 더 드릴 말씀은 한없이 많으나, 모두 다 쓸 수 없으므로, 여기서 마칩니다.
신유년(辛酉年) 9월 27일(1801년 11월3일), 소녀 유희 올림.」
-샤를르 달레 神父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