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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애

[스크랩] [그리스도의 생애] - 1. 유일하게 예언된 사람

 

[그리스도의 생애] - 1. 유일하게 예언된 사람


역사를 보면 자기가 신으로부터 나왔다든가, 자기가 신이라든가 아니면 신의 전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부처나 마호멧, 공자, 그리스도, 노자로부터 바로 오늘날 새로운 종교를 설립한 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주장을 한 자들은 참으로 부지기수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주목과 이목을 끌 만한 자격들이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측정 대상물은 무엇이나 그것과는 다른 외부의 척도가 필요하듯이, 신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정당한가를 가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나, 어떤 문명권이나, 어느 시대나 활용할 수 있는 어떤 불변의 측정 검사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정 검사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곧 이성(reason) 과 역사 (history) 가 그것이다. 이성이 측정 검증법이 되는 것은 누구든지, 심지어는 신앙이 없는 사람까지도,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역사가 검증법이 되는 것은 모두가 역사 속에 살고 있으며 역사에 대해 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따져 보건데, 만약 이들 가운데 어떤 한 사람이 실제로 신으로부터 나왔다면 하느님께서는 최소한도 그의 출현을 예고해주심으로써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새 모형차가 언제 나올지 고객들에게 미리 선전한다. 만일 신이 그로부터 나온 어떤 자를 보내신다거나 아니면 신이 몸소 모든 인간에게 전해 줄 막중한 소식을 가지고 오신다면 당신의 사자가 언제쯤 올 것이고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살게 되고, 어떤 교리를 가르치며 어떤 적을 만나게 되고, 그의 장래 계획과 그의 죽음에 대해 인간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신의 사자 (使者) 가 이러한 예고와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그의 주장의 정당성을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신의 이러한 예고가 없다면 역사상 어떤 사기꾼이 나타나서 "내가 바로 신의 아들이다"라든가 "사막에서 천사가 나에게 나타나 이러한 전갈을 주었다"고 주장하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을 막을 길은 없다. 그럴 경우 그런 심부름꾼을 검증할 만한 객관적 역사적 방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심부름꾼의 말밖에 없으며, 그의 말은 거짓일 수 있다.
   
만일 외국에서 워싱톤을 찾아 온 어떤 방문객이 대사(大使)라고 한다면 자연히 정부는 그의 여권과 그가 어떤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기타 서류 등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서류들은 그가 도착하기 이전의 날짜로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대사에 대해 이렇듯 신분을 확인한다면 당연히 이성도 신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신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신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이성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당신이 태어날 것을 예언할 어떤 기록이 있습니까?" 이러한 검증을 통해서 우리는 주장자들을 한 사람씩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예비심사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된다

소크라테스의 탄생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부처 역시 아무도 그의 탄생을 예고하거나 그의 메시지나 그가 언제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인지 예고해 준 바 없다. 공자는 어머니의 이름이나 출생지가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그가 탄생했을 때 사람들이 그를 하느님이 보낸 사자로 믿을 수 있도록 그가 태어나기 수세기 전에 그의 출생이 예고된 바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르다. 구약의 예언을 보면 그리스도의 탄생은 전혀 뜻밖의 사실이 아니다. 부처나 공자, 노자, 마호멧 그리고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들에 대한 예언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수많은 예언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와서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 "자, 내가 여기 있으니 나를 믿어라" 그러므로 이들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며 인간성을 지닌 신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리스도만이 유독 그러한 대열에서 벗어나 이렇게 말한다. "유다 민족의 기록들과 그와 관련된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역사를 조사해 보아라."
이 자리에서는 이교도의 기록과 구약성서까지도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문헌으로 간주하고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는 보지 않겠다

구약의 예언은 그 예언이 성취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언에 나오는 언어는 수학적인 정확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가지 메시아적인 흐름을 파헤치면서 거기서 나오는 결론적인 모습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활동과 비교해 볼 때 고대의 예언이 예수와 그가 세울 왕국을 가리키고 있음을 부인할 자가 있을까?

즉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그들을 통해 지상의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게 되리라고 하신 예언, 만민들이 복종하게 될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유다 지파가 다른 히브리 지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파가 되리라는 예언,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의 성서 즉 70인역 (譯) 성서에 메시아의 동정녀 탄생의 예언이 있다는 믿기 어렵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자기 백성의 속죄물로서 대신 자기 목숨을 던질 말없이 고통을 당하는 주의 종에 대한 이사야서 53장의 예언, 다윗 가문의 불멸의 영광스러운 왕국에 대한 전망, - 이러한 모든 예언들이 그리스도 말고 누구에게서 실현되었겠는가?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그리스도가 여타의 세계 종교 창시자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점이 여기에 있다. 일단 이러한 예언들이 그리스도라는 인물 속에서 역사적으로 성취 되었다면 모든 예언이 이스라엘 안에서 끝났을 뿐아니라 참된 빠스카의 어린 양이 희생되었을 때에 재래의 희생제사는 끝난 것이다.
   
이제 이교도들의 증언을 들어 보자.
고대 로마인들에 대해 말하면서 타치투스(Tacitus)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동방(The East) 이승(勝)할 것이며 유대에서 세상의 지배자이자 주인인 그분이 나올 것이라는 고대 예언을 사람들은 거의 믿고 있다.
수에토니우스 (Suetonius)는 베스파지안 (Vespasian)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로마의 전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예언들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분명히 최상의 권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동방인들이 널리 믿고 있었다>"

중국도 똑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중국은-동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현인이 서쪽에서 탄생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중화제국 연감에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다 :
"주 왕조 챠오왕 24년, 4번째 달 제 8일에 빛이 남서쪽에 나타나 왕궁을 비추었다. 그 찬란한 광채에 놀란 왕이 현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현인들은 이러한 이상한 조짐은 서방에 위대한 성인이 나타났음을 알리며 그 성인의 종교가 중국에 전래되리라고 적혀 있는 책을 왕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스 인들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킬루스 (Aeschylus)는 그리스도 탄생 6세기 전에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라는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이 나타나서 그대의 죄의 고통을 대신 받아들일 때까지 더 이상 이 저주가 끝나기를 기대하지 말라."
   
어떻게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았을까? 아마 그리스도 탄생 수세기 전에 다니엘이 이교도들에게 한 예언이나 유대인들을 통해 세상에 떠돌던 여러 가지 예언을 듣고 알았을지 모른다.
치체로 (Cicero) 는 "구원을 받기 위해 알아 모셔야 할 왕"에 대한 고대 신탁과 시빌스 (Sibyls) 의 말을 언급한 후에 기대에 차 질문하였다. "이러한 예언들은 어떤 인물, 어느 시대를 가리키는가?" 비르질리우스 (Virgil) 의 제 4 전원시도 동일한 고대 전통을 이야기하며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정결한 여인, 그 아들을 통해 철의 시대는 지나가 버릴  것이다." 고 언급하고 있다.
   
수에토니우스 (Suetonius) 는 동시대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로마인들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어떤 왕을 너무도 두려워한 나머지 그 해에 태어난 어린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명령을 헤로데에 의해서만 실행되었다.
유대인들만 현인 (賢人)이요 구세주인 위대한 왕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도 "앞으로 올" 로고스 (Logos) 나 보편적 현인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공자는 "성인"에 대해 말했으며 시빌스는 "전 세계적 왕"에 대해서, 그리스 극작가는 "최초의 원초적 저주"를 풀어 줄 구세주 구원자를 말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이교도들이 고대하던 측면이었다. 그리스도가 다른 모든 사람과 판연히 구별되는 점은 첫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교인들까지도 해방자나 구원자를 열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하나만을 보더라도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두 번째 구별되는 점은 그리스도의 출현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으로써 역사를 그리스도가 오기 전과 온 후, 즉 서기 후로 나누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처나 그 어떤 인도 철학자도 역사를 두 시대로 가르지는 못했다. 신을 부인하는 자들 까지도 그리스도에 대해 공격할 때 서기 몇 년이라는 연도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세 번째 점은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그리스도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죽음은 소크라테스에게는 장애물이었다. 죽음으로 그는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의 인생의 목표며 완성이요 그가 추구하던 최고의 명예였다. 그의 언행은 그의 십자가와 관련짓지 않고는 거의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구세주로 제시한다. 인간을 죄의 좌절감에서 구원한 후 착하게 살라고만 가르치고 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는다면 그의 가르침은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인생살이는 출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있어서는 그의 죽음이 시작이요 그의 생명이 끝이었다. 성서는 그리스도를 "사실상 세상 시작부터 살해된 어린 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거스른 첫 번째 죄와 반역으로 알면서 살해되었다. 그리스도의 출생자체가 그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죽음으로 몰아갔다기 보다는, 십자가가 먼저였고 십자가가 그의 출생에 그림자를 던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생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산 인생이었다. 갈라진 벽틈에 핀 한 송이 꽃이 자연의 시인을 말해주며 원자가 태양계의 축소판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탄생은 십자가형의 신비를 말해준다. 이미 예언된 대로 "예수" 나 "구세주" 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그리스도가 이유를 가지고 출생했다가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그의 출생이 완성된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탄생적 역사를 우리에게 말해 주며 마태오는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그리스도의 시간상의 탄생 전 역사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지상의 선조들이 죄인과 이방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  얼룩진 그리스도의 인간 족보는 죄인들, 그리고 하느님과의 계약과는 거리가 먼 이방인들에게 연민의 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죄인과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연민의 정은 나중에 오히려 그를 고발하는 죄목이 되어 그에게 되날라온다. "그는 죄인의 친구다." , "그는 사마리아인이다." 그러나 과거 조상들의 죄로 얼룩진 그림자는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고해주고 있다. 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그리스도는 한 인간이었기에 온 인류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성령과 충만한 은총을 받은 동정녀로부터 탄생하였기에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들을 물들 게 한 죄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구별되는 네 번째 요소는 그리스도는 세속적인 경세가들처럼 기존의 선한 사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자기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아들이며 혈육을 취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한 그런 인물이 아니라면 그는 "단순한 선한 사람"  이 아닐 뿐 아니라 그는 깡패요 거짓말쟁이이며 허풍선이요 인류사상 가장 뛰어난 사기꾼일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자기는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한 그런 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반 (反) 그리스도였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면 "선한" 사람도 되지 못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만은 아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를 숭배하든가 아니면 멸시하든가 양자택일을 하게 하였다. 즉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멸시하거나 아니면 참된 하느님이요 참 인간으로서의 그를 숭배하게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다. 따라서 철저한 반 (反) 그리스도인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를 감상주의자나 모호한 도덕 개혁가로 생각하는 자들보다 그리스도와 훨씬 가까운 자들일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최소한 그리스도가 이기면 자기들은 패배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밖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승리나 패배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승리할 경우 그들에게 요구할 도덕적 의무를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그의 주장대로 구세주여 구속자라면 우리에게는 강력한 그리스도가 있으며 요즘처럼 혼란한 시대에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있는 셈이다. 그리스도는 죄와 어둠과 절망을 짓이기시며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실 분이며,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지도자로서,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를 잃는게 아니라 자유를 누리며, 죽음에 이르도록까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오늘날 채찍을 만들어 새로운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몰아낼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멸해 버릴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십자가와 희생에 대해서 말하고 노한 바다와 같이 우렁차게 울리는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귀에 솔깃한 것만을 받아 들이고 따르기 힘든 모진 말들은 버리는 선택의 여지를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남겨두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도덕적인 의분을 재건시켜 줄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우리가 악을 진정으로 미워하고 물을 마시듯 죽음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선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출처 : [그리스도의 생애] - 1. 유일하게 예언된 사람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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