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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애

[스크랩] [그리스도의 생애] - 32. 주님의 죽음을 어렴풋이 예견한 여인

[그리스도의 생애] - 32. 주님의 죽음을 어렴풋이 예견한 여인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분명한 어투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해주셨지만, 한 여인은 직관을 통해 사도들보다 더 정확히 주님의 죽음을 예측하였다. 이 여인은 한 때 죄인이었던 마리아였다. 때는 성금요일 육일 전이었다. 장소는 한 때 나병환자였던 바로 그 시몬의 집이었다.
사도들과 여러 사람들 틈에 끼어 주님께서는 식탁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계셨다. 이들 가운데는 최근에 와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던 요한과 야고보가 있었고, 고통받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신적인 그리스도를 원하던 바위인 베드로, 간사함이 없으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개자인 그리스도를 보게 되리라고 약속받은 새로운 야고보인 나타나엘, 사도들의 자금을 관리하던 경리부장 유다, 잠시 후에 일제히 같은 행동을 취하게 될 나머지 사도들, 자신을 "부활"이라고 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최근에 살아난 라자로, 아직도 시중을 들며 손님 접대에 여념이 없는 마르타, 그리고 회개하는 죄인 마리아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 갈 즈음, 마리아는 순나르드 향유 그릇을 가지고 구세주의 의자 뒤쪽으로 갔다. 이 향유는 비싼 것이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는 유다는 그것을 일년간의 임금쯤 되는 것으로 평가했다. 향유는 마리아에게 비싼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아들에게는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었다. 이 값진 향유를 담고 있는 그릇은 가늘고 긴 목을 하고 있는 설화석고로 만든 종류였다. 마리아는 이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머리와 발에 듬뿍 발라드렸다.

며칠 후 최후만찬 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부숴질 당신 몸의 표시로 빵을 쪼개실 것이다. 마리아의 "부숴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은 결코 가볍게 보시지 않으며 그런 마음에서 나온 부숴진 옥합은 주님의 죽음을 희미하게 예고해주고 있다. 주님이 탄생하셨을 때는 동방박사들이 주님의 죽음과 장례를 위해 향유를 가져왔으나 이제 주님의 지상 생활이 끝나려할 즈음에 마리아는 다시 주님의 죽음을 위해 향유를 가져왔다. 먼저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바르고 나서 발에 향유를 발라드린 후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옛날 야곱은 돌에다 기름을 부어 하느님께 제사지내는 제단으로 봉헌하였지만, 지금은 이 여인이 새로운 이스라엘 위에 기름을 부어드려 주님을 희생제물로 준비해 드린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식으로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셨다. 주님의 이름 "그리스도" 는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 즉 메시아라는 뜻이었다.

그때 가리옷 사람 유다가 말했는데 모든 사도들이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향유를 팔았더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투덜거렸다. (요한 12, 5)

이것이 유다가 성서에서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유다는 그리스도를 버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온 신경을 다 쓴다. 마리아는 향료 그릇을 비웠지만, 유다는 돈으로 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다른 제자들도 절약의 우선 원칙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빵왕" 이 "구세주 왕" 보다 더 중요하였다. 화가 나서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분개하여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마태오 26, 8)

제자들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따라, 주님은 당신 몸에 영광을 주기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기를 더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몸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부숴질 것이다. 최소한 유다의 경우, 박애정신은 탐욕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쓴 것을 낭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주님은 즉시 이 여인을 옹호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요한 12, 7)

사실 사도들은 주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겸허하게 여인에 대해 사도들의 태도에 대해서만 꾸짖으셨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마음속에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주님의 임박한 죽음을 주님은 명백하게 드러내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이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것이다. (마르코 14, 8)

그녀는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물이신 주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다. 기름을 부은 것은 주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는 전표(前表)였다. 이런 사실은 주님의 죽음을 미리 앞질렀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동방박사들처럼, 마리아도 깨닫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주님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하게 만드셨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엿새 전에 마리아는 주님의 장사를 대비해서 주님께 기름을 부어드렸다. 여러차례 예고되었지만, 사도들은 아무리해도 주님의 죽음을 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마침내 주님께서 오신 이유, 즉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녀는 주님께서 돌아가신 그 후를 내다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문에 그녀가 스스로를 "부활이요, 생명" 이라고 하신 주님에 의해 다시 살아 난 라자로와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견에 대해 답변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한 12, 8)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말라" 는 말은 단수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유다에게만 하신 말씀이고, 나머지 말씀은 복수로 되어 있으므로 사도들 모두에게 훈계하시는 말씀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고통받는 인자로서 지낼 날도 엿새밖에 남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자들은 세상에 항상 존재하며, 가난한 자들을 도울 기회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베푼 것을 당신에게 베푼 것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그러나 한 주일 안에 인간의 모습을 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 우편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러 가시기 전에 짧은 여정을 마치실 것이다. 그 때는 주님을 위로하고 듣고 만지며 볼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난한 여인이 자기와 나의 죽음을 결부시키도록 내 버려두어라. 나는 다시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수난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와 함께 하는 것이 모든 자선보다 가치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는 자들은 항상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자들이다. 유다처럼 구세주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다가 은화 삼십 냥에 주님을 팔아 넘기기 위해 서둘러 떠나는 자들이다.
마리아의 행위가 언제나 기억될 것이라고 하신 구세주께서 이 여인의 행위에 불멸의 영예를 부과해 주셨다.
그녀는 주님의 장례를 위해 그러한 일을 하였지만, 주님은 이를 계기로 사도들에게 당신 복음이 전세계에 전파되며 마리아의 명성이 사방에 알려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26, 13)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게 썼다.
"수많은 왕들과 장군들 그리고 기념비가 기리고 있는 자들의 위대한 공덕들은 모두 말없이 묻혀져 버렸으며, 도시를 점령하고 성벽을 구축하고 전승탑을 세우며 많은 민족들을 노예로 삼았던 자들은 비록 석상을 세우고 법을 제정했지만 풍문으로나 이름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매춘부였으며 어떤 나병 환자의 집에서 열 두명이 보는 앞에서 기름을 부었던 이 여인은 전세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기리고 있다."

출처 : [그리스도의 생애] - 32. 주님의 죽음을 어렴풋이 예견한 여인
글쓴이 : 시냇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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