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종종 생각하듯이 성 프란치스코는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책무를 벗어나려는 예외적 태도를 취한 일이 한번도 없었다. 이 성인보다 더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일에까지 깊은 영적 태도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하찮은 일은 보통 사람들의 일과를 이루고 있고, 사람들은 흔히 이런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그런 일의 예속에서 풀려 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일에 생명을 주려는 의도는 이 일보다 더 큰일에 있어서와 똑같은 가치를 준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에도 역시 현존하시며 그 일을 비추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외적 업무를 바꾸기를 원치 않으신다. 자신의 혁신을 결심할 때 각자는 매일의 업무 이행을 계속해야 하며 거기서 손을 떼어서는 안된다.,br>
실재성 자체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실재성은 육체의 움직임을 통해 그 빛을 발하며, 그가 보고 행하는 모든 것을 감싸 준다. 그리고 이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을 충만케 하며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드러남을 본다. 이때에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하나가 된다. 이제 모든 영역에서 언제나 인간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분열시키던 대립은 해결을 보게 될 뿐 아니라, 보다 확고한 균형과 활발하고 생활한 일치를 영혼에게 준다.
한 예로 고독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고독은 영혼이 하느님을 찾을 수 없는 영원한 피난처이다. 이 고독은 성 프란치스코가 끊임없이 찾고 또 강조하던 것인데, 그는 알베르네 산 위에서 오상을 받을 때 이 고독을 체험했으며, 거기서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소리도 이 고독을 방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명상에 잠겼었다. 이 고독은 개인적 취미나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을 저버리게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둘러싸고 그가 바라볼 수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그의 눈을 한층 더 열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쳤던 모든 것, 초목들과 새들과 다른 모든 피조물은 그의 영혼의 고독을 깨뜨리기보다 더 완전하게 전체 현존(하느님의 현존)과 자기 자신-이는 하느님께서 매 순간 모든 존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 자신의 현존과 선물에 불과하다.-을 모든 피조물에게 제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동반자들 역시 이중의 형제애 안에, 즉 자기네들 까리의 형제애와 다른 사람들과의 형제애 안에서 각자 마치 하느님 앞에서처럼 투명하게 될 수 있도록 가까이 살아야 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학문을 경멸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에 무관심했고 또 그것을 불신했다는 것은 지나친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책에서 진리를 발견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데카르트와같이 언제나 창조사업이라는 큰 책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데카르트와같이 자연 안에서 교시를 받지 않았다. 그는 복잡한 추리나 치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놀랄 만치 민첩하게 근원적인 빛을 향해 갔다. 그리고 통찰과 현동 사이의 간격은 그에게 있어서 완전히 사라졌다. 성 보나벤투라, 스코두스, 오캄, 라이문도 룰레, 로저 베이컨 등 유명한 할자들을 배출한 프란치스코회가 규칙을 세워 학문을 배척했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결코 학문을 위한 학문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자연을 거쳐 자연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이르듯이 학문을 이용했으며, 학문을 이용함에 있어서도 자연을 경탄함에 있어서와같이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또 다른 찬미만을 찾으려 했다. "사랑을 지향하지 않는 학문은 앙화로다"라고 보쉬에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