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관상기도

" 어떻게 초자연적인 경지까지 올려주시는가 "


어떻게 초자연적인 경지에까지 올려 주시는가?


 


1.
여러분들 생각에 구송기도는 아무리 완전히 바쳐보았자 얻는 것이 적다고 할까봐, 나는 "주의 기도"거나 그 외의 구송기도를 외우는 동안이라도 주님은 여러분을 완전한 관상의 경지에 이끌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께 이야기하는 이의 말을 들으시고, 당신도 그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느님은 오성의 힘을 정지시키고 딴 생각을 막고 말문까지 닫아 주시어 사람이 말을 하려 해도 못해서 간신히 하게끔 되는 것입니다.

2.
하느님이 가르치실 적에는 이와같이 소리도 없이 인간의 기관들이 정지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기능을 발휘하면 해로울뿐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관은 까닭을 모르는 채 그냥 좋기만 하고, 영혼은 사랑에 불타면서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줄은 알면서도 어떻게 좋은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기쁨은 오성의 힘으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의지가 그 기쁨을 얼싸안기는 하나 어찌 된 일인 줄은 역시 모릅니다. 모르지 않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고생을 한꺼번에 다 치른다손 치더라도 이 기쁨을 얻기에는 어림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의 임자께서 내리시는 은혜로, 결국 당신만이 당신답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따님들이여, 이것이 곧 완전한 관상인 것입니다.

3.
이제 여러분은 관상기도와 어떻게 묵상기도와 틀리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묵상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누구와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우리가 무엇이길래 이렇듯 크신 분과 감히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생각, 가령 더할 나위 없이 님을 섬겨드려야 할 우리건만 우리는 너무도 당신 섬기는 일에 소홀했음을 깨닫는 것 역시 묵상기도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무슨 까다로운 외국어인 양 말만 들어도 놀랄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구송기도란 "우리 아버지"나 "성모송" 그 밖의 다른 기도를 입으로 외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묵상이 없는 음악은 얼마나 껄껄한 것이겠습니까? 아마 가사조차 번번이 틀릴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도에는 물론 하느님의 도우심과 함께 약간이나마 우리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금 말한 관상기도에 있어서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몸소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것으로써 우리의 본성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4.
관상기도에 대해서는 내 일생을 알고 싶어 하시던 고해신부님들의 명령으로 내가 전에 쓴 보고서에 상당히 길게, 그리고 내가 아는 대로 상세히 적어두었으니 이 자리에서는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관상의 경지에까지 도달케 하시어 행복을 체험한 몸으로 그 책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여러가지 요점과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도우시어 제법 그럴듯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 책을 보신 분들이 인정하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내가 쓴 책이 인정을 받는다는 말을 내 자신이 여러분에게 하는 이 꼴이 얼마나 뻔뻔스럽습니까? 여러가지를 쓰면서 내가 느끼는 그 부끄러움은 하느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이토록 나를 참아주시는 그분께 찬미 드립니다.

아무튼 초자연적 기도를 체험하는 이들은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이들은 그럴 필요없이 다만 이 책에서 내가 다루고 있는 바를 힘써 실천하면서 주님께 자기를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므로, 여러분이 가다가 멈춤이 없이 끝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노력만 한다면, 여러분에게 그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