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벗이여, 거듭 말하거니와 이 사랑의 기도는 기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다른 동기는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자신을 목적 삼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받아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되돌려 받고자 하는 기대가 전혀 없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느님 사랑에서 오는 결실들을 이야기하겠다고 나서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벗이여,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심이 후하기로 하느님을 따를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친절은 끝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기도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된 관심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보다 못한 선물들도 많이 내려주시니 우리가 선물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마르 6,31)라고 하시고,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사랑하는 벗이여, 그대가 필경 지금쯤은 알고 있을 테지만 관상적 묵상은 평안을 줍니다. 이것은 기운을 새롭게 북돋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과 견고한 정신을 심어주십니다. (시편 51장)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새로 나도록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104,30)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탐색에서 오는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일관된 선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몸이 지쳐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육체노동이나 운동을 심하게 하고 나서, 또는 오전이나 오후가 끝나갈 무렵에- 묵상을 하도록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그런 시간이면 어느 정도 지쳐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몸을 움직이고 싶어 근질근질하여 묵상이 방해받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관상적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쉬며 필요한 활력을 얻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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