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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기도

~ 불교 신자에게 예수님의 구원이 있는가 ? ~

 

불교 신자에게 예수님의 구원이 있는가?

참으로 단순하고 일상적인 질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은 확고히 대답하지요. ‘없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들이 모두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서 건져 내어야 하는 존재들이라고 우겨댑니다. (일부에 불과하지만) 극심한 경우에는 불상에 낙서를 하고 성모상에 똥칠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기본 마인드는 자신들의 종교 외에는 모두 구원대상인 셈입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행동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존 밀림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예수님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아이는 바로 지옥행인 것일까요?

그럼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어떤 결과를 맺을까요...
? 이들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스타일’을 닮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성가를 부르고, 성경을 옆에 끼고 다니고, 신부님을 잘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라시는 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근본 계명인 ‘사랑’,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의 근본 의미입니다.

이제 불교 신자들을 바라봅시다. 그럼 모든 불교 신자들은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서 무지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을까요? 불교의 근본은 자비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에도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공’ 사상이라는 것이 있어서 올바르게 파고 든다면 만물의 근본 주인에 대한 믿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단지 성경의 구절을 외우지 않았고, 교리 지식을 모두 알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 받아야 한다면 아마 저부터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성경을 다 외우지 못합니다. 아니, 과연 성경을 다 외우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나 될지 의문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톨릭 신자 본인들부터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스타일’만을 따라하면서 정작 예수님처럼 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반대로 타종교 신자들이 우리보다 더 훌륭하게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지 못해서 그만한 은총을 받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은 만큼 합당한 은총의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매를 덜 맞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면 더 큰일입니다. 불교 신자들에게도 그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르고 자신들이 아는 선의 가치에 따라 살아갈 때에 예수님의 구원은 작용을 합니다. 이것이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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