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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님 글

~ 예수님의 참가족 /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

 

 

 

<예수님의 참가족>

2014. 11. 2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마태오 12,46-50 (예수님의 참가족)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참가족>

오늘은 강론에 앞서 복음이 전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말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 맞습니까? 한 사람이 빠졌네요. 아주 중요한 한 사람, 바로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말씀드린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면, 마지막 이 한 사람은 빛나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영화 속으로 들어갑시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 사이에,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은 애써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족들의 간절한 만남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애써 찾아온 예수님의 가족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당신을 찾아온 소중한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던 예수님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가족들의 귀한 만남을 방해하는 것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야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스승님과 스승님의 가족들은 만나야만 한다. 만나게 해 드려야 한다. 혈연을 가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랴!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만나게 해드려야 한다.’

이윽고 이 사람이 예수님께 외치듯이 말씀드립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그의 외침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족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 이 마음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을 뛰어넘을 때, 인간적인 것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족 사이에서,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곧 예수님께는 또 다른 가족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족들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는 방해꾼이 아니라 한 가족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장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예수님께는 장벽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이라는 인간적인 테두리를 뛰어넘어, 당신을 통해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을 뿐입니다. 복음은 인간적인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적인 것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적인 것을 뛰어넘을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혈연관계만을 염두에 두신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안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를 제약하는 모든 인습적인 관계들, 곧 혈연, 지연, 학연, 종교, 계층, 계급,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적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든 요소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참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기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이라는 기준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인간적인 기준에 따른 다른 모든 관계에 참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이 관계들을 완성시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이란 사랑과 정의의 실천입니다. 관념적이 아닌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참가족으로 삼고자 우리를 부르십니다. 믿음의 벗님들 모두 예수님의 이 초대에 기쁘게 응답하는 오늘 하루를 가꾸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