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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5. 11.09.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5년 11월 9일 월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이사 56,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에 불러다가 나의 기도처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게 하리라. 그들이 나의 제단에 바치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내가 즐겨 받으리라.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응송
◎ 크시고 크시어라 주님이여, * 지극한 찬미가 어울리도다.
○ 거룩한 산 우리 하느님의 도성 안에서,


<청원기도>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포도밭을 손질하시고 보호하시며 소출을 많게 하시어,
― 당신 면전의 온 세상을 가득 채워 주소서.
◎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오늘의 복음 말씀> 요한 2,14-17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영적 독서> 책으로 하는 한달 피정/내 마음에 기쁨을 주는 말씀, 게르하르트 바우어 지음: 최용호 옮김
말씀은 신비입니다.
모두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신비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면 느낄수록 사람의 한계를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고들 합니다. 사실 하느님에 관한 우리의 개인적인 생각과 학문적인 정의는 모두 엇비슷하고 비유적이며 불완전하기 마련이지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처럼 위대한 신학자조차 자신이 평생 탐
구한 지식이 그저 단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년에 분명하게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신비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언 에크하르트와 같은 영성의 대기들도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중세에는 자신과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는 ‘무지의 구름’에 관한글을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성인들과 신학자들, 영성가들이 증언하듯이 하느님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한없이 초월적인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욥은고통중에 있을 때도 친구들과 대회를하고, 때로는 하느님에게 질문하며 자신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이 자신에게 했던 고통스러운 질문과 조언에 대해 값싼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입을 디물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은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후에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히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 42,5).

사진: 이태리 몬테카살레(성프란치스코)
Photo: Italy Monte Casale San France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