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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6년 1월 11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아침 찬미가 중
선행에 힘쓰도록 도와주시며
미움의 분한마음 녹여주시고
불행한 역경일랑 면케하시며
은총을 보존하게 도와주소서

맘일랑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몸일랑 정결하게 지켜주소서
믿음은 불과같이 태워주시고
속임수 해독일랑 씻어주소서

주님이 우리양식 되어주시고
믿음이 우리음료 되게하시며
성령을 우리맘에 부어주시면
성령에 우리취해 기뻐하리다

오늘을 기쁜하루 되게하시고
수치심 새벽같이 비춰주시며
믿음을 대낮같이 밝혀주시고
마음의 어둠일랑 몰아내소서


<청원기도>
우리 기도에 맡겨진 모든 이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 그들에게 영혼과 육신의 온갖 은혜를 풍부히 내려 주소서.
◎ 주여, 당신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마르 1,14-18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영적 독서> 내 영혼을 위한 3분, 게르하르트 바우어 지음: 최용호 옮김
내리막길, 역경을 이겨내는 힘

비밀을 나눌 때 시작되는 사랑
한 연인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시랑하는 연인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여자가 잘 웃지도 않고 기운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여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무덤덤했습니다. 그러한 반응에 실망한 남자는 무엇이 불만이냐고 도
대체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힘겹게 입을 열어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당신은 내 아픔이 무엇인지 몰라요.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기분만 좋게 해 주려고 하네요. 그 점에 대해선 저도 고마워요. 하지만 사랑은 상대방을 기분좋게 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같이 아파해 주는 거예요. 난 당신이 날 진심으로 사링해 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이 대화는 많은 인간관계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당신은 주변사람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고 있나요? 또는 주변 사람중에 당신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나요? 우리는 때때로 직장 동료나 가족, 친구들이 가진 문제를 알게 되지만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럴때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나 권한이 지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절감이나 죄책김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어떤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보다 그저 그 상황을 몰두하여 그 사람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과 고통, 고독, 잘못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할 때, 우리는 그 시간이 그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니눌 수 있는 시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통은 심오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킵니다. 당신이 누군가의 고통을 알게 된다면 그가 지닌 비밀 중 일부가 당신에게 선물로 온 것입니다.
또한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고통을 알게 놔둔다면 당신은 당신이 지닌 비밀의 일부를 밝힌 것이 됩니다.
이것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상처를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우리가 먼저 타인의 아픔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아픔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한다면 사랑
의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그러면 그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전보다 더 깊어졌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함께 아파해 주어야 할 누군가가 떠오르나요? 혹은 지금 아픔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한가요?

사진: 이태리 그레치오 은둔소 성프란치스코)
Photo: Italy Greccio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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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월요 강좌>
성서 강좌
필리피서(우정의 편지)
1. 필리피 교회와 사도 바오로
바오로는 트로아스에 머물렀을 때 보았던 환시로 인해 필리피에 갔다. 그는 “마케도니아 사람”을 보았고 그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한 소리를 들었다. 이 환시 후에 즉시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은 마케도니아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하느님께서 거기에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그들을 부르셨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사도 16,9-10). 사도행전의 보고에 따르면 필리피 교회의 첫 개종자는 리디아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다교의 높은 이상에 매력을 느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사도 16,14). 그러나 바오로가 선포한 복음을 들었을 때,루카가 표현한 대로,하느님은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녀의 집안 모두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사도 16,14-15). 이들은 필리피 교회의 핵심이 되었고,리디아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는 동안 바오로와 그의 동료에게 지극한 환대와 호의를 보였다(사도 16,15).
사도행전에서 언급된 또다른 유일한 필리피 개종자는, 바오로가 투옥된 감옥을 지켰고 후에 그의 집안으로 인도했던 로마 병사였다(사도 16,30-33). 그리스도인이 된 간수는 바오로와 실라스의 상처를 씻어 주었으며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했다.

부유한 부인과 로마 병사가 바오로를 따르고 이들 주위 사람들이 반응하여 필리피 교회와 사도의 관계는 깊어졌다. 바오로가 필리피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들도 역시 그러했다는 사실은, 그의 친서(참조. 폴리카르푸스가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3,2)인 이 짤막한 편지에서 명백히 나타난다(1,7; 4,16 참조). 바오로가 필리피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그는 ‘사도 바오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보낸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에게 그의 사도직을 확신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바오로를 애통케 하였고 그가 목소리를 높일 만한 일이 필리피 교회에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명백히 이 필리피의 신자들 안에 분열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득찬 사람(2,3-4),투덜거리고 따지는 사람(2,14),주님 안에서 다른 사람과 나아가 교회 내 모든 이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4,2 참조)도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온화한 어조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는 가운데 일치하고 상호관심을 갖도록 주지시킨다.

바오로는 필리피 교회의 일원으로 몇몇 다른 사람들을 거명한다(에파프로디토스,에우오디아,신티케, 클레 멘스 2,25; 4,2-3). 이는 유럽 땅의 첫 그리스도인 교회가 많은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초창기부터 여성이 이 교회에서,심지어 교회 지도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그 교회의 첫 개종자는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한 여성이었을 뿐 아니라, 바오로가 필리피에 당도한 후 강가에서 리디아와 함께 기도 중에 모였던 다른 여성들도 리디아의 모범과 증언에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을 것이다. 이 서간에서 언급된 네 명의 필리피인들 중에 두 명이 여성인데,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려고 자신과 함께 열심히 일했던 여성들을 지주 묘사한다(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