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3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토비 4,14-15a. 16ab. 19
얘야, 무슨 일을 하든지 조심해서 하고, 네 모든 몸가짐을 신중하게 하여라.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아라. 굶주린 사람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네 의복을 나누어 주어라. 필요 이상의 물건이 너에게 있거든 그것으로 남을 구제하여라. 언제나 주 하느님을 찬양하고 네가 가는 길을 평탄케 해주시기를 간구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할 것이다.
응송
◎ 내 주여, 당신 계명에로 * 내 마음 기울게 하소서.
○ 당신의 도로 나에게 생명을 주옵소서.
<청원기도>
오늘 모든 이와 함께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게 하소서.
◎ 주여, 당신의 형제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마르 1,35-39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영적 독서> 내 영혼을 위한 3분, 게르하르트 바우어 지음: 최용호 옮김
결승선, 다시 돌아보는 하루
나락에서도 들리는 목소리
살다 보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끝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여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새로 시
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큰 고통과 근심 중에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은총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느낄 때에도 은총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견딜 수 없을 때에도 우리는 은총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줄기 빛처럼 우리의 어둠을 비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
했다. 네가 이미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존재하실까? 그분은 어떤 분이실까?
그분은 내 삶의 어디쯤에 계시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중 완벽한 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은 하느님이 우리와 아주 가까운 분이시면서도 초월적인 존재이시고,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이시며, 부모님처럼 자상한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그가르침 안에는 하느님이 몸소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신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그 길
을 따로 우리를 찾아 오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가장 깊은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에 가장 강렬한 만남으로 다가오시며 말씀
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룰 용서했다.”
최근에 절망했던 적이 있나요? 그때 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스스로 막지는 않았나요?
사진: 이태리 그레치오 은둔소 성프란치스코)
Photo: Italy Greccio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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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수요 강좌>
교회사 강좌
세계 교회사
고대그리스도교
제1기 1-311년
제5절 그리스도교 최초의 정신적 발전
2세기에서 최초로 중요한 신학자는 리용의 이레네오(+222년경) 주교였다. 주요 저서인 「이단 반박」에서 그는 180년경부터 184년까지 무엇보다도 참된 신앙을 순수하게 보전하기 위한 참된 사도전승의 의미를 뚜렷하게 하였다. 그는 그것이 로마 교회 주교들의 베드로 계승을 통하여 가장 명백하게 보증되어 있다고 보고, 이 논증을 그노시스적인 이단에 제시하였다(이단 반박 3,3). 그는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로마 주교의 명단을 전해주었다.
같은 시기 북아프리카에서는, 법률가이자 신학서 저술가인 테르툴리아노(+220 이후 카르타고에서)가 활동하였다. 그 역시 그노시스 이단자들에게 참된 전승의 원리를 신앙의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주저인 「이단자들의 시효에 대하여」('200년경)에서 그는 아래 두 개의 적절한 “확인”개념을 통하여 그들을 배척하였다. 즉, ①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을 오직 사도들에게만 전하도록 위임하였고, 그밖에는 누구에게도 위임하지 않았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이 자징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럽. 그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전했다는 특별한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② 사도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오로지 자신들에 의해서 설립된 주교 교회에만 위탁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앙에서 이 사도적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 사도전승에 존재하지 않는 교리는 이단이다. 그러므로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이단자들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는 자신의 수많은 저서에서 오늘에도 사용되고 있는 많은 신학적 개념들을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만년(207년경)에 엄격주의적인 몬티누스주의로 넘어감으로써 스스로 이단에 빠지고 말았다.
로마에서는 3세기 초에 사제 히폴리토(+215)가 많은 신학서를 저술하였다. 그중 특히 「모든 이단의 논박」은, 222년 이후 모달리즘을 따르는 사벨리우스의 삼위일체적 이단과 이른바 성부수난설 주장자들에 대하여 쓴 것이다. 그는 또 큰 영향을 미친 교회법규인 「사도전승」(220년경)을 저술하였다. 하지만 217년의 교황 선거에서 갈리스토(217년)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그는 이를 무시하고 교황이 됨으로써 그의 질투와 모욕당한 공명심 때문에 불행하게도 교회의 대립을 초래하였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 의해서 (최초의) 대립 교황으로 당선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로마에 최초의 이교를 초래하였다. 그후 그는 교회와 다시 화해하고, 235년 폰시아노 교황과 함께 유배중 순교하였다.
카르타고에서는 치프리아노 주교가 활동하였는데, 그는 246년에 세례를 받았고 248/249년에 주교가 되었으며 258년에 참수되었다. 그는 교회일치의 강력한 대변자였다. 그의 「교회일치론」(251년경)에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는 자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질 수 없다”라
는 말이 있다. 또 이 책의 제4장에 언급되어 있지만 때때로 부당하게 공격받는, “수위권이 베드로에게 부여되었다. 교회가 세워진 베드로좌에서 분리된 자가 아직도 교회 안에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교회일치론 4.7)라는 문장도 옳은 말이다. 물론 이 말을 로마의 재치권상의 수위권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원고 알아들어서는 안된다. 치프리아노 자신도 255년부터 스테파노 1세 교황과 불화가 생겼다. 그는 이단자 세례의 유효성에 관한 논쟁에서 - 그릇된 성사 개념에서 - 세례의 효력이, 접전하는 사제의 은총 상태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변호하였다. 즉, 스스로 성령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자는 세례에서도 그것을 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을) 주는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인간。자신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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