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5일 금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2고린 1,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이시며 모든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느님으로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느님의 위로를 받는 우리는 온갖 환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또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응송
◎ 주님은 나의 힘, * 나의 기쁨이시도다.
○ 주님은 나를 구원하셨나이다.
<청원기도>
당신의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신앙을 고백하였사오니,
― 주여, 우리에게 순수하고 굳은 신앙을 주소서.
◎ 주께서 당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어 성부께 바치셨나이다.
<오늘의 복음 말씀> 마르 6,22-29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영적 독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에디트 슈타인, 이연행 옮김
4. 예수님 안에 머무르기
몇 세기에 걸쳐 유포되어 온 신비적 조류는 교회의 기도 생활과 동떨어져 정도를 벗어난 비주류의 지파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내적인 교회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정해진 공적 예식에만 참가하신 것이 아닙니다. 복음사가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로는 예수님은 어쩌면 훨씬 더 자주 모든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산 위의 훤히 트인 꼭대기에서, 사막에서, 홀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기도는 야곱의 계단이며 이 계단 위로 인간의 영은 하느님께로 올라가고 이 계단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에게로 내려옵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무한한 헌신을 하느님께 드리면 하느님의 선물이 돌아오는데 이것이 바로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입니다. 여기에 도달한 영혼들은 진정 교회의 심장이 됩니다. 그런 이들 안에서, 예수님 안의 교회의 시랑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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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금요 강좌>
신학 강좌
제3절 종교개혁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기
4.변증 신학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개신교측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응은 무엇보다도 칼바르트에 의해 세워진 변증신학이다. 출발점은 독일에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지했던 제 1차 세계대전의 재앙이었다. 이 끔찍한 체험(그리고 스위스 목회지에서의 강론자의 곤경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저서 “로마서”(1919) 그리고 조직적으로 “교회 교의신학” (1936-1969)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따르면 “시간과 영원사이” 내지“ 하느님과 인류사이”에 근본적인 변중관계가 성립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안에서 인간들에게 말씀을 하시고 전혀 다른 분이시기 때문에 신학은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의 상황에 대한 응답 혹은 인간의 문제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본래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이다. 신학은 따라서 인간학이 아니라 하느님 진술이다. 변중신학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근본적인 “다름”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교는 오로지 하느님의“계시”이고 다른 종교들과 세계관들과 같은 수준이 될 수 없다고 변호한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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