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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6년 2월2일 주님봉헌 축일 화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2월 2일 화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말라 3,1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 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 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 

 

응송
◎ 거룩한 주님 궁 뜰에서 * 주께 조배 드리라.
○ 영광과 힘을 주께 돌려 드리라.


<청원기도>
하느님 나라의 모퉁잇돌이 되시어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신 예수여,
―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부활의 표본으로 삼게 하소서.
◎ 주여, 우리 눈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루카 2, 27-35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영적 독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에디트 슈타인, 이연행 옮김

3. 사랑하는 님, 여기 계시며, 오시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아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역시 가장 열성적인 포기의 자세로 하느님이 그에게 기대하시는 바를 행하는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삶은 그의 내적 삶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적인 기도로 몇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 안에 행하시는 일은 섬광처럼 우리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은총을 위한 은총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다른 시간들은 이 선물에 감사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545)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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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화요 강좌>
영성 강좌
영성신학, 샤를 앙드레 베르나르 지음 /정제천·박일 옮김
영성과 신학
영성과 교의신학
2. 영적체험의 독창성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영적 체험이 신앙의 신비의 본질을 포착하는지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영성사를 간략하게나마 되짚어 보기로 하자.
1) 관찰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첫째 측면은 영적인 지각은 늘 부분적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영성사에서는 신비 전체를 배경으로 하되 시대와 인물에 따라서 이런저런 측면이 부각되었다. 교부들에게서는 근본적인 주제가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이었으며, 중세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관상하는 것이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그 디음에는 창에 찔린 예수 성심에 대한 관상과 보속이라는 주제로 넘어갔고 오늘날에는 애덕에 관한 구체적인 헌신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강론을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성령의 은사라는 주제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상이 이런 식으로 단편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불성실이나 오류의 표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신비의 다양한 측면들은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신앙에 의해서 신비의 개별적인 면을 파악하는 사람은 신비 전체와 접촉하게 되고 이로써 구원 계획의 유일한 원천인 하느님께 의탁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특정적인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 성심, 성모, 자비로운 사랑, 하느님의 섭리 등의 다양한 신심들이 개별적인 측면으로부터 형성되어 어느 정도 조직적이고 인격적인 다양한 영적인
외형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2) 신앙 내용에 대한 시각이 부분적이더라도 동시에 진정한 것일 수 있다는 정당화의 근거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신앙에 기초한다는 사실에 있다. 사실 신앙은 어떤 한정된 분명한 명제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필시 부분적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진술들에 동의하면서 그 신앙이 가려키는 실재를 적극 수용한다. 신앙은 단지 어떤 객관적 내용을 인식하는 지성의 행위만이 아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그 덕분에 인간이 계시의 원천인 신비 전체와 하느님께 동의하는 데에 꼭 필요한 선물이다.

신앙의 대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다. 첫째는 신앙 대상의 관점에서부터 보는 것인데, 그때 신앙의 대상은 어떤 단순한 것, 즉 우리가 믿는 실재 자체이다. 둘째는 신앙 주체의 관점에서 보는 것인데, 그때 신앙의 대상은 언어의 표현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복합적인 것이다. 그런데 믿는 행위는 언어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 자체를 지향한다. 실상 우리는 오직 실재 인식을 위한 도구로서만 언어적 표현을 쓰는 것인데, 이는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로 타당하다.(성 토마스 ‘신학대전’ 2-2부 1문 2항).

3) 영적 언어는 보통 신앙의 언어에 근거한다. 신앙의 언어가 전체계시에서 중심적이라고 판단된 명제들을 그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 다듬어 가듯 성체 혹은 성모 마리아의 인격과 같은 개별적인 신비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그 풍요로운 의미를 탐구하여 보다 더 본질적인 표현들로 집약해 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신비는 신앙의 신비 전체와 연결되어 있기에 그 신비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전망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신비는 주관적인 각도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윤리 생활 전체를 집약하는 영적인 태도들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하여 하나의 신심, 즉 개인적인 영성 생활의 형태가 탄생되는 것이다.

4) 끝으로 우리가 신앙의 신비에 동화하는 것은 향상 점진적이라는 공통의 체험 사실에 주목해 보자. 영성 생활의 뿌리와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함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영성 생활의 발달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존재론적 기초가 아니라 오히려 향주덕의 실천, 특히 사랑의 실천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영성 생활의 발달 여부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얼마만큼 완전한 협력을 하느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보를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죄들과 관련해서 볼 때도 인간의 자유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성 생활의 기초와 목적이 세워진다고 해서 개인 생활의 길과 밀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하느님과의 일치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룰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동의의 유형은 단지 일반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뿐이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알려
주시며 사도적 활동이나 봉헌, 기도 청빈, 정결 등을 통해서 당신을 모방하도록 제시하신 형태들은 여러 가지이다. 또한 삼위일체의 체험 안에서 각자가 삼위 하느님과 갖는 관계에 대한 의식도 다양하다.
요컨대 교의신학의 특수 대상인 그리스도인 생활의 존재론적 기초가 유일하다고 하면 그 주체가 그것을 경험하고 그에 대해서 의식하는 체험은 다양하다. 다양한 이 체험이 바로 영성신학의 특수 대상이다.(87)

Dominic Ko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