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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6 년 2월 22일 월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2월 22일 월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사도 15,7b-9
하느님께서는 내 입을 빌려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시려고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뽑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그들에게도 내리셔서 우리와 똑같이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셔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응송
◎ 온 세상 제후들로 * 그들을 삼으셨도다.
○ 그들은 당신 이름을 세세 대대에 기념하리이다.

<청원기도>
우리는 사도들 위에 세워진 당신의 거룩한 교회 안에서,
― 한 몸이 되었나이다.
◎ 주여, 사도들의 무리가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오늘의 복음 말씀> 마태 16,18-19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영적 독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에디트 슈타인, 이연행 옮김
7. 교회 안에서의 생활
인간의 정신은 문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또 즐기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이 다양한 문화적 영역과 접촉하지 못하면 완전히 꽃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사람이 자신의 타고난 자질이 발휘되는 분야를 잘 아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는 그가 무엇으로 부르심 받았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알아 볼 수 있는 작은 부분의 삶에만 국한되고, 실질적으로 표면에서 만져지는 채로 있는 모든 것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인간의 정신 생활의 발전에 있어서 전환기에 와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위기가 더 오래 계속된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그것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수록 자신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582)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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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월요 강좌>
성서 강좌
필리피서(우정의 편지)
본문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만 소개하지 ‘사도’라고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필리피 교회 신자들과는 더없이 친밀해서 누구도 바오로의 사도성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함께 일하는 티모테오를 등장시켜 복음은 어느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공동 과제라고 분명히 한다(1,1).
이어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줄곧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하며 고생을 같이 해 온 필리피 신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참된 지식과 온갖 이해를 갖추어 사랑이 더 풍부해지기를 기원한다(1,9-10). 사랑은 자주 이기심과 자애심의 가면을 쓰기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랑이 아닌 이기심과 시기심,경쟁심이라는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1,15-17).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는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확신하고 있기에 살든지 죽든지 그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를 찬양하기만을 간구한다(1,20).

생사를 초월해 있는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회 신자들에게 복음을 받은 사람의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에 있다고 깨우쳐 준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1.27)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2.1-2).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 권력 학벌 지식 등에서 힘을 얻으려 한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도는 이어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2,5)라고 당부한다. 예수님의 마음은 초대 교회의 신앙고백문이었던 그리스도 찬가(2.6-11)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찬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겸손과 비움 순종을 본받으라는 가르침이다. 믿음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보여 주셨던 모습을 그대로 본받으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라는 뜻이다. 그래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필리피 교회와 계속 친교를 나누었다. 당시에 감옥은 보통 땅 속 토굴이나 춥고 음산한 동굴이었고,쇠고랑을 찬 죄수들이 그 자리에서 먹고,자고,일보고 했기에 몹시 불결하였다. 그러니 체력이 좋지 않고서는 몸이 약해져 병을 얻기 쉬웠다. 그래서 필리피 신도들도 바오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냈던 것이다. 그 선물을 갖고 온 에파프로디토스가 바오로의 옥바라지를 하다가 중병을 앓고 회복되자 바오로는 그를 필리피로 돌려보내면서 이 편지를 써 보낸다(2,25-30).

바오로의 어조는 3장부터 달라진다. 유다계 보수파 그리스도인들과 영지주의자들을 거슬러 격렬한 표현을 쓴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3,2)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처럼 현격하게 달라진 어조와 내용 때문에 이 부분을 다른 편지의 일부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도는 이단자들과 맞서기 위해서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가치면에서도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래로 자기 삶은 완전히 변해서 전에 자기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쓰레기로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10-11)고 역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다고 여기지 않고,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3,14) 있다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낸 바오로는 이제 필리피 교회에서 생겨난 문제를 직접 지적한다. 우선 에우오디아와 신티케 두 여자가 서로 화해하여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4,2) 하도록 당부한다. 살면서 크고 작은 일로 서로 틀어질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곧바로 ‘화해와 용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음으로 일반 신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기도하며 기뻐하는 가운데 바르게 생활하라고 촉구한다(4,4-7). 아울러 자신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그대로 실천하라고 권고한다(4,8-9). 끝으로 필리피인들이 보낸 선물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과 존경과 신앙에도 감사하면서 끝 인사를 나눈다.(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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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