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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6년 3월 2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3월 2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필립 2,12b-15a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응송
◎ 주여, 부르짖으오니,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내 영혼을 고쳐 주소서.

<청원기도>
죽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
― 항상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하소서.
◎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그 정의가 이루어지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마태 5,17-19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영적 독서> 성경말씀을 통해 부정적 감정극복하기/두려움, 조이스마이어지음, ’문종원 옮김
1. 두려움에 맞서서

두렵더라도 해보아라!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밀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 1 ).

만일 하느님께서 집과 기족 그리고 몸담았던 모든 것을 떠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인가?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직면한 도전이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되풀이해서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리엘의 자손들을 이끌어 그들의 유산으로 주어질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라고 부르셨을 때 주신 메시지와도 같다(여호 1,6.7.9).
전적으로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려고 히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삶의 지표로서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자주 들어야만 할 것이다.
에콰도르에서 다른 네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엘리자베스 엘리옷아라는 여인의 남편도 피살당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혀 살게 되었다고 말했다. 매번 이러한 상황에서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칠 때마다 두려움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녀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두렵더라도 해보라는 제안을 하였다.
엘리자베스 엘리옷과 살해당한 다른 선교사의 동생인 레이첼 세인트는 남편과 오빠를 죽인 인디안 부족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려면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미룬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위해서나 이웃을 위해서나 심지어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조차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여호수아는 둘 다 하느님을 믿고 순종히는 마음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겼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두려운 일들’을 소명감을 가지고 수행하였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두렵더라도 해보아라’ 라는 말을 상기시켜주셨고, 그러고 나서 두려움에 대한 무언가를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셨다.(629)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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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수요 강좌>
교회사 강좌
세계교회사
고대 그리스도교
제1기 1-131년
제7절 내적 위기: 분열과 이단
엔크라트주의: 이레네오(이단 반박 I, 28)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양탄자 I,15.71 등) 170년경에 널리 전파되어 위협적인 규모였던, 엄격한 육체 멸시적이고 금욕적인 경향의 변호자들을 엔크라트주의(금욕가)로 부르고 있다. 우리가 이미 위에서 호교가로 알게 된 타시아누스도 여기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교의적으로는 옳았으나 그들의 금욕적인 요구에 있어서는,
분명히 마르치온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신자에게 육식과 음주만이 아니라 부부관계에까지 완전한 절제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견해는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그러나 엔크라트주의적인 경향은 약화된 여러 가지 형식으로 존속되었고, 수도생활의 전사前史와 그 초기 역사에서 일종의 역할을 하였다.

몬티누스추의: 몬타누스주의는 원시 그리스도교적인 감격과 결합되었던 금욕주의적인 특징을 내포하고 있었다. 일찍이 퀴벨레 여신의 사제였던 몬타누스는 교회가 너무 속화되었다고 비난하였다. 156/157년부터는 -172년경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 엄격한 도덕 개혁과 금욕을 설교하였고, 순교 앞에서 도망치는 것을 비난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순교를 자원해야 하고, 아니 순교로 돌진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또 원시교회의 종말론적인 긴장을 부활시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바로 목전에 다가왔다고 알렸다. 그는 특별한 계시를 끌어대고, 이제 그리스도를 넘어 하느님의 계시가 종결 • 완료에 이르렀다고 하며 성령의 예언자로 자처하였다. 그는 광신적인 두 여성, 즉 프리쉴라와 막시밀라의 지원을 받았고, 이 여인들도 예언자적인 환각과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는 그리스도의 도착을 기다린다며 자신들의 신봉자들올 프리기아의 페르푸치에 모았다. 그들의 엄격한 윤리는 많은 신봉자를 모았다. 그후 북아프리카로 파급되어 거기서 207년경 테르룰리아노와 같이 정신적으로 높은 권위를 지녔던 사람까지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때부터 몬타누스주의는 소위 도덕과 속죄 규정이 매우 이완되었다고 하며 교회와 매우 격렬하게 싸우게 되었다.(58)

Dominic Ko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