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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c Ko 신부님

~ 2016 년 3월 6일 사순 제 4주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3월 6일 일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느헤 8,9b. 10b
이날은 너희 주 하느님께 바친 거룩한 날이니 울며 애통하지 말라. 이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말라. 주님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 주시리라.

응송
◎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여,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우리의 죄 탓으로 당신은 상처 입으셨으니,

<청원기도>
우리의 모든 불화를 없애게 하시어,
― 주께서 주시는 평화와 사랑을 즐기게 하소서.
◎ 주여, 우리 안에 당신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루카 15,31-32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영적 독서> 성경말씀을 통해 부정적 감정극복하기/두려움, 조이스마이어지음, ’문종원 옮김
1. 두려움에 맞서서
용기와 순종으로 큰 상을 받는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여훼께서 아브라함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마라, 아브람아.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창세 15,1).

이미 창세기 12장 1 절에서도 보았듯이,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려운 과제를 주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포기하고 말았다면 나머지 이야기는 결코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신 하느님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매우 큰 상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의 백성을 약속한 땅으로 이끌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여호수아나 그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 계획하고 마련하신 그 모든 것들을 결표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뜻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탄의 속임수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말씀 안에 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기도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야고 5,16)(636)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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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6일 사순 제4주일 강론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을 사순 제4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자비와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비유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또는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관한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 가운데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습니다.

되찾은 아들은 회개한 죄인이요 큰아들은 늘 하느님을 섬겨 온 의인으로 상징됩니다. 다시말해서 예수께서 식탁 친교를 나눈 세리와 죄인들이 작은아들에 속한다면,늘아버지 옆에서 섬겨 온 큰아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죄인과 의인 그리고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모두 동일한 자녀로 사랑하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바라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지식과 율법을 통해서 만나는 하느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집을 나가 방황하다 돌아온 작은아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쁘게 맞이하는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율법에 갇힌 하느님을 바라보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죄인들의 비참한 처지를 동정할 줄 모릅니다. 자신도 동생과 같은 처지를 당할 수 있다는 겸허히 되돌아 봄 없이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큰아들의 태도는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을 당연히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시려는 구원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의 어떠한 공로로도 맞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얻기 위히여 우리가 할 일은 구원에 맞갖은 공로를 많이 쌓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구원을 받아들이고 구원의 본질인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안에서 큰 아들의 모습과 작은 아들의 모습을 일상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아무런 흠없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만자족하는 큰 아들과 같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인해 세상의 여러가지 유혹에 무너져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라고 자신를 비하하고 좌절하는 작은 아들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두 모습을 지닌 인간을 겸허히 들여다 보며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주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고상한 생각들과 훌륭한 말로 남들을 훈계하고 가르치지만 거기에 자비와 사랑이 없으면 큰아들과 같은 바리사이파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이와 반대로 자신은 죄많은 사람으로 어둠의 길을 헤메이더라도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때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작은 아들처럼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일어 설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Dominic Ko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