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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부활 팔일 축제내 목요일 / 기경호 신부님 ~



부활 팔일 축제 내 목, 루카 24,35-48(16.3.31)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지금 여기서 영(靈)으로 찾고 만나는 주님


예수님께서 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셔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제자들은

여전히 죽은 이들 가운데서 그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하며 의심합니다

(24,36-37).

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했을까요?

그들의 시선이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육신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기에 부활하신 그분이

유령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전과 다름없는 분이셨으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靈)이시기에(요한 4,24) 영 안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권고 1,6).


 따라서 주 예수를 영과 신성으로 보지 않고 인성(人性)으로만 보아

그분이 하느님의 참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던

모든 사람을 단죄받았습니다

(권고 1,8).

나 또한 사도들처럼 그렇게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고,

인성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육신의 소생을 기적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계시며 기쁨과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고정된 사고의 틀과 감각의 세계에

머물러있는 체험, 관념, 습관 등을 버려야 합니다.

부활하신 분이 어디에 계시는가 하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지금’ ‘여기’,

 나와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분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떻게 부활했는지 묻지 말고, 부활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어야 옳습니다.


그분의 되살아나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시간과 장소, 고정관념과 감각의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바로 그분이 부활하신 뒤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이 근원적인 진리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낮추시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다가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놀라는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며 의혹을 없애주시고,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시어 그들 앞에서 음식을 잡수십니다

(24,38-43).


 수난의 신비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듣지 못한 그들의 처지로 내려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비허’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부활을 사는 우리의 몫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처럼 부족하고 약한 믿음을 가진 나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24,47-48).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함께해주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분께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수난의 사랑과 자기비허의 사랑을 선포하는 증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