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신앙의 진리를 배워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정보화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혼자서도 수없이 많은 신학적, 영성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성경만 해도 한권 값이 말 한필 값에 맞먹을 정도로 고가인데다 너무나 귀해서 신자들은 아예 접할 수조차 없던 시대도 있었으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손쉽게 신앙의 진리를 접할 수 있고 습득할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이 알고 있는데도 때로는 그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복음적이지 않고 삶에 변화가 없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우리가 찾고 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 진리라면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으니 문제입니다.
진리를 삶으로써 행복하지 못한 까닭은 첫째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나 무지 때문이고, 다음은 진리를 올바로 알았다 해도 그것을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진리란 거짓에 반대하면서 사실과 일치하여 표현되는 사고, 말, 가르침을 일컫습니다.
또한 진리는 이성, 논리 또는 과학적 탐구의 규범을 따르는 선언이나 이론을 뜻하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특히 진리가 올바른 실천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구원의 진리를 말합니다.
진리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 그분의 충실함을 조건 없이 믿고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이 바로 진리이십니다.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진리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 진리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진리요, 사랑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영원불변의 진리이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알려고 합니까?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깨달아 살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분의 처신을 본받아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 진리의 길입니다. 그런데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기는 하지만 살아내지 못한다면 진리를 안다고 할 수 없겠지요.
완전한 진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믿음과 사랑 없이는 결코 통합적이며 총체적인 진리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활동 안에 머물 때 진리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산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입으로 고백하며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대해 말하고 고백하지만 이 사회가 더 복음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진리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하느님의 힘입니다.
진리는 절망 속에 희망을, 비탄과 고통 속에 기쁨을 볼 수 있게 하는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과 삶 자체입니다.
오늘도 진리의 영께 자신을 맡기면서, 진리를 인식의 차원이나 감성의 영역에서 찾지 말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진리, 생명의 진리를 살아내는 행복한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누군가 널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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