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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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묻습니다. 복을 바라는지 저주를 바라는지.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 기적에 대해 몇 사람이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이라고 수근거리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선을 악이라 부르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목소리지요.
말을 못 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된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요. 한 사람이 평생 얽매여 있던 억압과 부자유에서 풀려나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이는 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희망과 위로가 됩니다.
사람은 마음에 품은 것을 누리기 마련입니다. 형제의 치유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자신도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는 것이고, 의혹과 왜곡의 마음으로 비틀어 보면 자신이 믿는 대로, 마귀 베엘제불의 힘을 선택한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 주님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시는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예레 7,27)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이 엮어 온 관계성의 역사는 슬프게도 거부와 불순종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신부로 선택하신 백성에게서 신랑이신 하느님은 늘 내쳐지고 외면당하셨지요. '백성의 불륜과 배반, 하느님의 분노, 백성의 회개, 하느님의 용서'가 그들의 역사에서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는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안고 가는 문제입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계획과 주님의 뜻이 상충할 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 주님의 뜻을 그분에게서 온 것이 아닌 것으로 외면해 버리기도 하니까요. 대놓고 베엘제불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한 주님의 선의를 왜곡하고 의심하며 결국 자기 뜻을 선택합니다.
이런 사람의 모습을 알면서도 주님께서 보내시면 순종해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는 예언자의 심정을 느껴 봅니다. 무수한 참 예언자가 하느님처럼 배척받고 무시당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요. 예수님 역시 이를 모르시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한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계십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이들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르리며 진심의 사랑을 알아들어 달라고 호소하십니다.
갓난 아기가 그 조그만 손으로 아빠나 엄마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에너지가 흐르는 장면이지요. 우리가 주님의 선의와 호의, 진실을 의심치 않고 순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창조하고 살리시고 되살리는 하느님의 손가락에 의지해 살아가는 겁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느냐, 베엘제불과 함께 살아가느냐는 우리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의 말씀은 지금 우리의 삶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최선인지 의심하며 그분을 시험하고 떠보는 일을 그만 멈추라고 호소하십니다. 사랑이신 그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주님 현존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 기대어 나아갈지, 베엘에불의 힘을 힐끗거리며 나아갈지, 답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녹록치 않은 삶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손가락 꼭 잡고 그분 현존 안에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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