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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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진심을 아는지 물으십니다.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 싸매 주시리라. ... 살려 주시고 ...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호세 6,1-2)
주님과 맺은 계약에 불충했던 이스라엘이 그분께 매를 맞아 몰락과 유배의 쓴 잔을 마시지만, 주님은 머지 않아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되돌려 주십니다. 주님은 벌을 위해 벌을 내리시는 게 아니라 그들을 주님 백성의 자리, 순결한 신부로 되돌리시려고 잠시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호세 6,3)
그래서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을 알자고 독려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자고 말입니다. 그분은 작은 실수도 엄벌에 처하시는 무섭고 혹독한 하느님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분이심을 인식할 때 백성과 주님와 관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니까요.
"오, 하느님! 제가 ... 저 세리와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
종교와 학문으로 백성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바리사이들은 실제로도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는 금욕적인 이들입니다. 그들은 당장 하느님 앞에 선다 해도 그다지 죄송하거나 두려울 일이 없는, 그래서 구원을 따논 당상처럼 여겨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4)
같은 기도의 현장에서 전혀 다른 고백이 들립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주님께 아룁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자신의 부정함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세리는 율법상으로도 죄인일뿐 아니라 실제로도 가난한 이들을 등쳐 제 배를 채우는 탐욕스런 악인이니, 주님의 자비밖에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 성전 안에서 하느님 현존 앞에 선 이 두 사람의 기도가 이처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비유로 바리사이의 평소 열성을 비난하시거나 세리의 잘못을 두둔하시려는 게 아닐 겁니다. 사람의 기도에는 그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또 알고 있는지가 드러나기 마련이니, 이 기도를 통해 진정한 의로움이 어디에 있는지 숙고하도록 초대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유 속 바리사이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완벽하고 철저해야 하느님께서 보아주신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인간적인 힘을 총동원해 사람에게도 주님께도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그리고, 의도만큼 자기 관리가 되면 스스로를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치 않는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자기 업적과 공치사, 험담과 고발의 혼잣말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반면 세리와 같은 이는 하느님의 자비 밖에는 희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에도 고개를 들 수 없고 하느님께도 늘 송구한 죄악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때만 반짝하다가, 또다시 자기 죄의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뒹구는 가련한 실존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주제에도 하느님을 영영 떠나지 못하고 부정하고 불결한 몸과 마음인 채로 자석에 끌리듯 다시 주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는 고개도 못 들고 가슴을 치며 통회하고 슬퍼하지요.
비록 율법을 지키지도 않고 신학도 모르는 죄인이지만 세리는 하느님이 무한히 자비하신 분이심을 압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지요. 그렇다고 자비를 믿고 죄를 즐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의 기도는 진정으로 통회하는 겸손한 영혼의 그것이니까요.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예수님은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간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겉보기에 그럴듯하게 모범적인 바리사이의 독백보다 세리의 자비 청원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적 질서를 제대로 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 내 앞에서는 완벽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하고 때 묻고 일그러지고 깨져 있어도 괜찮다. 보잘것없이 작아도 된단다. 아니, 작으면 더 좋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 앞에 머무르는 우리 각자의 기도를 깨어 의식해 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인식하는지에 따라 기도의 색깔과 온도가 참 많이 다르겠지요. 주님이 작고 낮추어진 우리 영혼을 사랑으로 보듬는 분이심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과 더 친밀해지고 뜨거워질 것입니다. 자비이신 분 앞에 엎드려 자비를 간청하는 이는 참으로 복됩니다. 벗님이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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