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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2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4월 12일 부활 제2주간 월요일

 

 

2021.04.12.mp3

2.47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새로 태어남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그 사람이 밤에 예수님께 와서"(요한 3,1)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유다교의 명망 높은 어른이고 율법을 수호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스승이지만, 계보도 없이 느닷없이 나타나 진리를 설파하고 표징을 보여 주는 예수님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낀 듯합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어, 밤이라는 어둠의 시간을 택해 움직이지요. 빛이신 분 앞에 섰으나 아직 빛을 향해 열리지 않은 그의 내면이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지식과 명망, 재산 등 세상 것을 부족함 없이 누리는 그에게 예수님은 새로 태어남을 말씀하십니다. 그에게는 퍽 생소한 제안일 것 같습니다. 니코데모는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태생적으로도 기질적으로도 나름 탄탄한 길을 걸었을 법합니다. 하느님께 충실한 만큼 그 이상의 교육과 대우를 받으며 성경에 근거한 메시아를 기다려왔을 겁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사실 지금까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아니 아주 만족스런 삶을 누려온 이는 굳이 새로 태어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갖춘 커리어의 그 무엇도 내려놓지 않으면서, 누려온 바에 그저 무언가 살짝 더 얹고 싶은 욕구 정도로 신앙에 접근하기도 하지요. 여기까지는 제 아무리 학식 있고 부유해도 아직 육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자신을 송두리째 뒤집는 새로운 탄생을 요구합니다. 이제까지의 완고하고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인 시야가,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돌보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인내를 깨달으면서 새로운 지평으로 열리는 신비입니다. 영의 생명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제1독서에서는 제자들의 놀라운 기도를 들려 줍니다.

"이제,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사도 4,29)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을 맞이한 동료들이 한마음으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우리를 구해 달라'고 기도할 줄 알았는데, 더욱 담대히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청하다니요!


그동안 겁 많고 두려움에 짓눌려 비겁함마저 보인 제자들이 어디 간 걸까요? 지금 우리 앞에서 당당히 주님의 길을 걷는 이들이 이전의 그들과 동일인이 맞습니까?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사도 4,31)
제자들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 지금의 그들이 되었습니다. 조심성 많고 의혹으로 주저하며 두려움을 덜치지 못한 복음 속 니코데모와 사뭇 다른 모습이지요. 물론 니코데모도 후일 예수님을 위해 큰 정성을 보일 테지만 그때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지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열정과 선포에 있어 담대함! 성령을 받은 이의 특징입니다. 무엇을 많이 배워서도 아니고 주변에서 인정해 주는 신분이어서도 아닙니다. 믿음 하나 부여잡고 있는 그들을 움직이시는 힘은 성령이시지요.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화답송)
하느님의 마음이 시편 작가의 입을 빌어 드러납니다.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이는 모두 하느님의 아들/딸이지요. 인간적 혈연 관계 안에서 누구누구의 아들/딸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보시며 "너는 내 아들/딸"이라고 하시는데, 이 사랑 고백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십니까?


부활 시기에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누차 초대할 겁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우리의 희망이듯, 그분께서 보내주실 성령 또한 순례길에 있는 우리에게 대전환의 힘이 될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새로 태어나길 간절히 청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여전히 주저하며 '이건 말고요, 이 부분만 조금요' 하는 우리의 의혹과 두려움을 성령께서 걷어내 주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새로 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담대히 청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겁니다. 새 창조의 문턱에서 성령을 기다리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