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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 (성화) 성 레오니데스 순교자 / 파브리아노의 복자 프란치스코 기념일 +++

The Resurrection-PINTURICCHIO

Fresco. Palazzi Pontifici, Vatican

 

요한 3,31-36

31  위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신다.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32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시다는 것을 확증하는 사람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36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하느님의 영원한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축일:4월22일

성 레오니데스 순교자

St. LEONIDAS of Alexandria

San Leonida Martire, padre di Origene

Died:beheaded in 202 at Alexandria, Egypt

Canonized:Pre-Congregation

Leonida = simile al leone, forte, dal greco = similar to the lion, fort, from the Greek

 

 

세베루스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 알렉산드리아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순교자는 박학한 크리스챤 철학자인 레오니데스이다.

 

그는 기혼자이고, 그의 일곱 아들 중의 맏이는 저 유명한 학자인 오리게네스(philosopher Origen)이다.

에집트의 집정관 레투스가 박해를 시작하면서 그 역시 체포되었다.

당시, 17세이던 오리게네스는 순교의 열망에 불타서 부친을 찾아나서려 하자, 그의 모친이 그를 집안에 가두었다.

이리하여 그는 부친에게 용감하고도 즐겁게 순교의 영광을 받으시라는 글을 보냈다.

레오니데스는 202년에 참수치명하였다.

 

 

▶ 오리제네스 
라틴어  Origenes 


Origenes(185?∼254?).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며 주석가. 교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으며 202년의 박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주교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의 충돌로 피신한 교사 글레멘스(Clemens)대신에
알렉산드리아 교리신학파의 지도자로 지명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영위하였다.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또한 이교철학자와의 호교적 논쟁에 대처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와 이교문학을 공부하였다.
215년에 이어 230년 팔레스티나의 재방문 때 그 곳 주교들에 의해 서품받은 문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되어 231년 체사레아(Caesarea)에 정착, 그 곳에 유명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250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로 고문받았으며 끝내 사망하였다.

 

성서주석서로는 ≪핵사플라≫(Hexapla)가 유명하며
그 밖에 그의 성서주석은 구약의 거의 전부와 4복음서들을 망라하고 있다.
신학서는 ≪원리에 대하여≫(De Principiis)가 주목되며
금욕적 저서 ≪순교에의 권고≫와 ≪기도에 대하여≫가 고대에 널리 읽혔다.
마르치온설을 반대한 그의 교리는 완전히 초월적인 일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으나
철학적 사색은 가끔 매우 대담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정통성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다소 의심되고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축일:11월25일

 

 

 

 

 

 

오리게네스 사제의 순교 권고사에서

(Nn. 41-42: PG 11,618-619)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당하고 있으니 그의 위로도 같이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옮겨 감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옳겨 갔다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가지 않고 아직 죽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음의 어둠에서 나와 소위 말하는 살아 있는 돌로 지은

생명의 빛이 비추는 건물에 들어간 이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해 우리 생명을 바칩시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우리의 순교를 보고 감화를 받게 될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자랑할 시간이 왔습니다. 성서는 말해 줄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에 대해 자랑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가져 오고 인내는 사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가지고 오며

끈기는 희망을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우리가 많은 위로를 받기 원한다면 많은 고난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애통하는 이들도 위로를 받겠지만 아마도 같은 정도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다 똑같은 정도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이들은 참여하는 고난의 정도에 따라 위로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확신에 찬사도의 다음 말씀에서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은층의 시기에 나는 너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때문에 경비병에 둘러싸여 패배자처럼 하지 않고

승리자처럼 엄숙히 사형대로 끌려 나가는 날보다 더 은총이 넘치는 때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으뜸들과 권세들을 완전히 눌러 이기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거둡니다.

그들은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그분이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세상을 하직하는 날말고 구원의 날이 또 있단 말입니까? "나는 간청합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사업이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은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온갖 인내심으로무슨 일이나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하십시오."

다음의 말씀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이제 내 바랄 것이, 주여, 무엇이오니이까? 내 소망, 그것은 당신께 있나이다."

 

 

 

 

 

오리게네스 사제의 강론에서

(Homilia 9,1-2: PG 12,871-872)  

 

우리는 하느님의 제단과 집을 짓는 살아 있는 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 있는 돌입니다.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세의 돌 중에서 가장 강하고 단단한 돌을 기초로 깔고 전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그 위에 집을 짓듯이 산 돌 중에서도 일정한 돌을 골라서

이 신령한 집의 기초로 삼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초로 놓여진 사람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과 예언자들입니다.

사도 바울로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누가 만일 이 집을 짓는 데에 마땅한 돌이 되려고 스스로 준비하여 기초에 가까운 돌로 놓여지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집의 기초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말씀대로 "이미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듯 고귀한 기초 위에 거룩하고 신성한 건물을 짓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 성전 건물에는 제단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살아 있는 돌인 여러분 중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밤낮으로 하느님께 청원을 드리고,

간구의 희생을 바치는 사람이 예수께서 제단을 만드실 합당한 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제단의 돌은 얼마나 귀중해야 할 것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입법자 모세가 말한 대로 "제단은 쇠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같이 완전한 돌은 과연 누구입니까?

사도들이야말로 완전하고 흠 없이 거룩한 돌이며

그들의 일치와 화목으로 모두 함께 한 제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며, 입을 열어

"주여, 당신은 모든 이의 마음을 아시나이다."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음이 되어 말과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예수께서 성부께 제사를 바치시도록 한 제단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같은 생각을 하며 다투는 일도 없고 헛된 영광을 찾는 일도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도 아마 제단을 만들기 위한 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사제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Tomus 10,20: PG 14,370-37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의 성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자기 육신이나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여기서는 유다인들을 뜻합니다.)

즉 아버지의 집을 자신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든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네들을 성전에서 쫓아낸 데 대해 화가 치밀어 하나의 표적을 청합니다.

 

그 표적을 통해서, 자기네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는 성전에 대해 말씀하시는 듯하지만 실은 당신 몸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 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 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고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성전과 예수님의 몸 두 가지 다 교회의 상징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산돌로 세워져 거룩한 사제로서 신령한 집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로 모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참된 성전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의 돌들의 일치와 조화는 "내려가 다 흩어졌나이다." 라는 시편 21편의 말씀에 따라

끊겨 나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박해와 혼란을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성전의 일치를 깨뜨리는 자들이 일으키는 전쟁으로 인해

이 일치는 끊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복구되고 몸은 사흘째 되는 날,

즉 환난의 날이 지나고 그 다음날인 완성의 날 후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집을 세우는 이 뼈들이 주님의 위대한 날에 그분의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로 인해

다시 살아날 때, 새 하늘과 새 땅의 셋째 날이 참으로 동틀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수난을 뒤쫓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온 몸의 부활 신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묻힌 다음 다시 일어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온 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먼저 십자가에 못박혀 이제 생명이 끊긴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로처럼 우리 각 사람도 그로 인해 우리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은 우리에 대해 죽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밖에는 자랑할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에 대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묻혔습니다.

"실상 우리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 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우리도 하나의 보증을 얻었다는 뜻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고 말합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회홈에서)

축일:4월22일
파브리아노의 복자 프란치스코 
BlessedFrancis Venimbeni of Fabriano

Beato Francesco da Fabriano
Fabriano, 1251 - Fabriano, 22 aprile 1322


 

   프란치스코 베님베네(Franciscus Venimbene,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에서 의사인 부친 콤파뇨 베님베니와 모친 마르가리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울기보다는 웃는 아이로 자랐고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 불과 16세 때에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지만 그의 성덕과 학덕은 남달리 뛰어났다. 수련기를 마칠 즈음 그는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전대사를 받으려고 아시시(Assisi)에 갔다가 레오 수사를 만났다.  

   프란치스코는 특히 책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도서실을 만든 첫 번째 프란치스코 회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연옥 영혼들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매우 정성스럽게 미사를 봉헌하는 분으로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홈에서)

 

 

 

포르치운쿨라의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8월 2일

Perdono di Assisi (Indulgenza della Porziuncola)

Our Lady of the Angels
Also known as : La Negrita; The Little Black One; Virgin de los Angeles 

OUR LADY OF THE ANGELS OF THE PORTIUNCULA   

 



포르치운쿨라 Porziuncula(작은 몫)
작은 형제회의 머리이고 어머니이시며 천사들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성당(전대사축일:8월2일)

"성인은 이 곳을 어디보다도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곳을 특별한 경의(敬意)를 가지고 받들도록 명하였다.
그는 그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주고,
자기는 자기와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그 사용권만을 가짐으로써
이곳이 형제회의 겸손과 극도의 가난의 표본으로 언제나 보존되기를 원하였다.”(2첼라노)


뽀르지웅쿨라(작은 몫) 성당의 내부 모습

 

 

포르치운쿨라(작은몫) 성당 내부의 제대 벽화

 

이 벽화는 본래의 자그마한 포르치운쿨라 성당 벽화입니다.

첼라노는 성 프란치스코의 포르치운쿨라 성당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 프란치스코는 몸집이 작고, 마음은 겸손하였으며, 수도서원에서 작은 형제였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기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작은 몫(portiuncula)을 차지하였으니,

세상에서 가진 것 없이는 그리스도께 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떨어진 땅이 예부터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로 불리었으니, 이는 하느님의 예언적인 섭리라 아니할 수 없다.

 

예수님 다음으로 모든 성인들의 화관이 될 만한 공로를

탁월한 겸덕으로 세우신 동정 성모의 성당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 성당에서 작은 형제회가 태동하였다.

견고한 기초인 양 그 위에서 형제들의 수가 늘어갔고 형제회의 고귀한 건물이 솟아올랐다.

성인은 이 곳을 어디보다도 사랑하였다.

그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곳을 특별한 경의(敬意)를 가지고 받들도록 명하였다.

그는 그 소유권을 다른 이에게 주고,

자기는 자기와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그 사용권만을 가짐으로써

이곳이 형제회의 겸손과 극도의 가난의 표본으로 언제나 보존되기를 원하였다.”

(2생애 18항).




세라핌적 사부 성 프란치스코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특별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고

’천사들의 성 마리아’, 혹은 ’포르치운쿨라’라고 불리우는 소성당을 큰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곳에서 작은형제회와 성글라라 수도회가 축복된 기원을 두었고 성인이 삶을 마감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호노리오 3세에게서 이 성당에 포르치운쿨라 전대사를 얻었다고 하며

여러 교황들께서 다른 많은 교회에 이 전대사를 확대하였다.

세라핌 수도가족은 이러한 여러 이유에서 이 성전 축성일을 경축하며 천사들의 성 마리아를 기린다.

(작은형제회홈에서 www.ofm.or.kr)



포르치운쿨라의 전대사

 

성 프란치스코는 교황 호노리오3세에게서 이 성당에 포르치운쿨라 전대사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교황들께서 다른 많은 교회에 이 전대사를 확대하였다.

 

형제인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1226년 10월3일 성 프란치스코가 형제인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말년의 성인은 심한 고행과 오상으로 인해 쇠약해져 거의 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죽음울 임박했음을 깨달은 성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씨시 읍을 축복했고 마지막 시각엔 알몸으로 맨땅에 눕혀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형제인 죽음이여, 너를 환영한다"고 말하고서

안젤로 형제와 레오 형제더러 형제인 죽음을 노래불러 달라고 명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마지막으로 다윗의 시편을 노래하고 자신에게 재를 뿌리라고 하고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장소에서 형제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회홈에서 www.ofmconv.or.kr)


 

 

 

건너감 경당의 모습

 

형제회의 환자 병실로 쓴 곳으로 왼쪽 문은 성인 당대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경당의 외벽의 벽화는 1226.10.3. 사부님께서 형제적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땅에 누워 시편141(142),과 요한복음을 봉독하게 하셨다.


 

전대사 全大赦
라틴어 indulgentia plenaria
영어 plenary indulgence


죄에 대한 유한(有限)한 벌을 모두 취소할 수 있는 사면.
신을 제외하고는 어는 누구도 자기가 언제 전대사를 받을 지, 혹은 받았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신만이 인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전대사를 주거나, 주지 않는다.
전대사를 받기 위한 내적 조선과 외적 조건이 주어지는데,
내적 조건은 "소죄(小罪)를 포함한 모든 죄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고,
외적 조건은 고해성사, 성체배령, 교황이 지시한 기도 등 3가지다.
외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고,
만일 어느 하나라도 불충분하다면 한 대사(限大赦)밖에 받을 수 없다.
전대사는 하루에 한 번만 주어진다.

 

 

대사 大赦 
라틴어  indulgentia  영어  indulgence  독일어  Ablass 
  
죄를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잠벌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보속(補贖)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한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 교황이나 주교들이 줄 수 있는데, 대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의 보고(寶庫, treasury)에 있는 공로를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대사는 보통 전대사(全大赦, indulgentiae plenariae)와 한대사(限大赦, indulgentiae partiales)로 나눠진다. 전대사란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 주는 것이고, 한대사란 그 벌의 일부분을 없애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대사나 한대사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대신 받을 때 그것을 대원(代願, suffrag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대사제도는 초대 교회 박해시대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교회의 보속규정에 의하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기간, 예컨대 40일, 혹은 80일, 300일, 혹은 몇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그에 해당하는 벌을 사면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박해기간 동안에는 이러한 규정들을 지키기 힘들었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 데 일종의 장애요소로도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특별한 경우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하였다. 이 속죄기간의 단축이 대사의 기원을 이룬다.
그 후 중세 초가 되면 속죄기간의 단축 대신 속죄를 사면(redemptiones)하는 관습이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른 속죄 규정서가 나왔다. 이것이 이른바 대사의 원형이다. 십자군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사는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나 십자군을 위하여 재산을 기부하는 자에게 주어졌다. 십자군운동이 끝난 후에는 일정의 공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자에게도 대사가 주어졌다. 중세 말이 되면 소위 ‘대사설교가’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대사를 남용하면서 소위 ‘면죄부’라고 알려진 증서를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이의 규제를 등한시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규정을 만들어 대사의 남용을 규제하였다. 잇달아 교회법에 규정되었던 엄한 보속은 폐지되었고, 교황 바오로 6세는 대사에 대한 법을 제정하며 대사의 의미와 규정을 명확히 하였다. 이에 따라 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이 해야 할 의무들도 대폭 완화되었다. 즉 대사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자로서 고백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성당참배를 하고, 교황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보통 대사는 성년(聖年)에 베풀어지지만 성년이 아닌 경우에라도 교황이 정하는 바에 따라 대사는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대사가 벌의 사면에는 효과를 갖지만 죄 자체를 사면하는 효력은 없다

(가톨릭대사전에서)


 

 


간추린 프란치스칸 영성
복음적 그리스도 중심적 영성, 사도적 선교적 영성, 작음과 형제애

 

작음과 형제애
  프란치스꼬회의 공식명칭은 "작은 형제회"(Ordo Fratrum Minorum)이다. 이 명칭은 바로 프란치스칸 영성을 요약해 주고 있다. 작음(minoritas)과 형제애(fraternitas)를 바탕으로해서 복음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이 작음의 정신은 그 안에 가난과 겸손이라는 덕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작은형제들은 가난하시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의 삶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가난한 자가 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하나가 되며 그들로부터 복음화되고 복음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식한다. 또한 가난한 자들처럼 일과 노동을 통해 땀흘려 일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며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처럼 하느님께 신뢰하며 복음적 불안정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일과 노동은 생계유지의 제일차적인 수단이며 나머지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존하며 그분이 보내주시는 은인들의 애긍을 통해서 살아가게 된다.
  형제애의 정신은 사랑과 순종을 전제로 한다. 프란치스꼬는 수도회 개념보다는 형제회 개념을 더 중시하였다. 우리 모두는 맏형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들이라는 것이다. 이 형제애는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고 돌보는 이상으로 형제들 상호간에 기르고 돌보는 정신"이다. 이러한 형제애는 가난 안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 형제 상호간의 사랑과 애정어린 순종은 기쁨의 영성을 프란치스칸 영성의 특징적인 요소로 부각시켜 준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체험되는 형제애는 신분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로 확장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크리스챤이든 이교도이든 원수이든 강도이든 성한 사람이든 병자들이든 모든 이가 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아들이도록 해 준다. 더 나아가 프란치스꼬가 그랬듯이 이 형제애는 자연과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더욱더 확장된다. 바로 우주적인 형제애, 만인의 형제가 되는 것이 프란치스칸 형제애의 본질이다.
(작은형제회홈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거룩한 상흔(오상)축일:9월17일

*복자 요한 파브리아노 축일:3월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