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1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2021.05.11.mp3
2.43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성령의 오심을 기대하게 만드십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요한 16,7)
제자들은 떠남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근심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유아들이 느끼는 분리불안과 같을 겁니다. 예수님이 유다인들에게 겪으시는 모함이나 공격의 강도가 세지는데 설상가상으로 예수님께서 반복해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걸 보면 상당히 불길합니다. 메시아의 측근으로서 걸었던 기대마저 물거품이 될 것 같아 제자들 심경이 착찹할 겁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당신께서 가셔야 보호자께서 오시리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뭐든 좋은 거라면 다 누리고 싶은 게 인간 욕심이라 예수님도 떠나지 않으시고 보호자 성령도 함께하시면 더 좋을텐데,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막연히 불길하기만 합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요한 16,8)
성령께서는 유다인들이 특히 더 집착해 온 죄, 의로움, 심판에 대해 진리를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진짜 죄'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진짜 의로움'은 성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우두머리들이 탐닉하는 진리의 호도와 부정한 탐욕과 과시가 그들이 받고 있는 '진짜 심판'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귀한 하느님 모상성을 욕정과 바꾸고 어둠을 택하였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다름 없으니까요.
제1독서에 등장하는 간수의 회심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16,30)
험악하게 매질을 당하고 "가장 깊은 감방에" 갇혀 있던 바오로와 실라스에게 간수가 묻습니다. 느닷없는 천재지변으로 지진을 겪고, 죄수들이 도망갔다고 생각해 자결하려 하다가, 문이 모두 열렸음에도 감방을 떠나지 않은 사도들이 그를 만류한 까닭입니다. 삶과 죽음의 격랑을 건넌 간수가 사도들의 인격과 담대함에 그동안 가졌던 관념이 "기초부터 뒤흔들린" 듯 보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간수는 사도들이 대답한 대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그동안 가졌던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관념이 바닥부터 뒤집어져야 합니다.
먼저, 간수가 죄수인 사도들 앞에 엎드려 구원에 대해 물었다는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세상 법정이 내린 심판을 실행하고 관리하는 간수로서 놀라운 일이지요. 진정한 구원은 세상의 심판과 반드시 결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은 듯 보입니다.
그리고 간수는 세상이 죄수라 낙인 찍은 이들을 자기 재량으로 데리고 가서 상처를 치유해 주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죄 지은 이들을 통제하는 직업이라 이 행동 자체가 심각한 위법일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테고 그 자신이 나름 준법가로 살았을 터인데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요?
결국 간수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신앙을 받아들이지요. 진정한 의로움이란 율법이나 세상 법을 지킴으로써 획득하기에 앞서 성자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다는 것을 그가 직접 보여준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새로운 전복이 일어납니다. 그동안 고착된 낡은 자아를 깨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변화되라고 기초부터 뒤흔들며 오시니까요.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기다리는 우리도 제자들처럼 기대와 근심, 두려움이 혼재할 겁니다. 간수는 삶과 죽음의 격랑에 휩쓸리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해 깨달으면 더 이상 세상 앞에 콧대를 치켜들며 오만할 일도, 또 반대로 주님 앞에 죄책감으로 절망할 일도 없을 겁니다. "주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한 간수처럼 그저 기쁘고 행복하고 충만할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진리를 새롭게 밝혀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존재와, 우리를 둘러싼 무엇인가가 기초부터 뒤흔들려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성령께서 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놓읍시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이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활 제 6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5.14 |
---|---|
~ 부활 제 6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5.13 |
~ 부활 제 6주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5.10 |
~ 부활 제 5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5.08 |
~ 부활 제 5 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