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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5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5월 7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2021.05.0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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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친구" 이야기입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친구"는 서로를 알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관계지요. 그 관계는 종속적이지 않고 이해관계를 넘어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나 군중 가운데 있는 익명의 무리 정도로 치부하지 않으시지요. 제자들이(우리가) 감히 예수님의 친구라 불릴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언감생심 원할 엄두도 못 내는 걸 예수님이 먼저 제안하신 겁니다. 자격 논쟁은 잠시 제쳐두고,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하느님과 한 분이신 예수님과 피조물인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 이상의 어마어마한 간극을 지닌 존재지만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친구라 여기십니다. 이는 곧 그분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셨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자식, 연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은 가장 본능적이고 육적인 질서에 기인합니다. 친구는 그들을 포함해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모든 인연들로 확장되지요.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형제'나 '이웃'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가족이나 연인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과 무관해 보이는 모든 이들, 모든 피조물까지 친구요 형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사랑, 그들을 위해 자신을 헐어낼 수 있는 사랑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당신을 모함하고 해치는 이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친구라는 표현의 영성적 정의는 달라졌지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 부르신 이상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약함과 불충,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의 친구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예수님의 겸손과 관대함, 연민이 담긴 사랑 덕분입니다.

제1독서는 안티오키아에 편지로 전해진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내용을 들려 줍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사도 15,26)
"(안티오키아 신자)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먼저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의 신원을 인정하고 보증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친구라는 증언과 다름 아닌 표현이지요.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이 숙고하고 토론하여 나온 결정은 단지 그들만의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뜻임을 명백히 합니다. 사도들과 원로들의 이 자신감은 그들의 인간적 위상에서 나오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는 그들 자신이 곧 예수님의 몸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존재라는 믿음에 기인합니다.


영의 인도를 받는 개개인이 모여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나누고 길을 찾을 때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성령과 함께 결정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예수님의 친구이고 서로의 친구이며, 또 성령의 친구라는 뜻이지요.

친구이신 예수님께서 다정히 우리를 당신 곁자리로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신뢰하시고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주시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한 것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육적 인간적 이해 관계를 뛰어넘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친구요 형제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당장 목숨을 내놓는 거창한 일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자신 생명만 귀하게 여기며 윤택하게 가꾸는데 골몰하지는 않게 되지요. "친구"의 사랑에서는 자기 이익이 죽고, 자기 자아가 죽으며, 자기 정욕이 죽습니다. 어쩌면 생물학적 죽음은 가장 나중 문제일지 모릅니다. 이미 그만큼 사랑하는 이는 이미 자기 목숨을 바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친구이신 예수님과 함께, 성령과 함께 "친구"의 사랑으로 뛰어드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친구여서 행복하고, 여러분의 친구여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