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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6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5월 13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2021.05.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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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성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요한 16,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떠남을 말씀하시자 그들이 동요합니다. 궁금한 것은 많은데 직접 여쭙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서로 묻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묻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왜 자신있게 묻지도 못하는지 잘 아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한 16,17)
"'조금 있으면' ... 그것이 무슨 뜻일까?"(요한 16,18)
제자들이 궁금한 것은 이 두 가지로 모아집니다. 예수님께서 대체 어디로 가신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게 언제인지 의문스러운 것 같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세상 권력자가 아닌 이상 하늘에 계신 분이 맞을 터인데, 그렇다면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스승의 현존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 그 시간이 과연 언제 올 것인지 알아야 뭐라도 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여쭙기조차 두려운 듯 보입니다. 아직 직면하기 어려운 진실이기 때문일까요? 때로는 무지가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는 법이니까요.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예수님은 당신의 떠남에 대해 제자들과 세상이 정반대로 반응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지금 제자들이 느끼는 미세한 불안과 두려움이 실제 이루어지는 날,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고요.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상실의 고통 앞에서 마냥 울며 애통한 상태로 우울과 어둠에 싸여 지낸다면 그 모습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성정과 거리가 멉니다. 스승의 수난과 죽음, 동족의 거부와 배척, 박해와 공격은 분명 고통과 시련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부활과 새 생명의 희망을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성령께 축성받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겪는 신앙 체험의 역동성을 비춰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사도 18,6)
말씀 전파에 전념해 유다인들에게 선교하던 바오로는 또 다시 배척을 마주합니다. 동족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사도에게는 참 아픈 현실이지만, 그는 당당히 직면하고 끗꿋이 그 고통을 넘어섭니다.


"아퀼라, 프리스킬라, 실라스, 티모테오, 티티우스 유스투스, 회당장 크리스포스"
이들이 바로 오늘의 제1독서 대목 안에 등장하는 바오로의 협력자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 소명을 적극 지원하며 보호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지요.


오늘 복음 속 제자들이 아직 고통이나 시련을 직면하지 못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근심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어쩌면 아직 그들 내면에 출세의 야망이 정화되지 못하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성령을 체험하고 부활의 희망으로 무장하면 사도 바오로처럼 당당히 자신의 소명에 투신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거부와 실패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 자신의 소명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께서 수많은 협력자들을 보내시어 당신의 현존을 체험하게 해 주실 것이고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욕정과 탐욕의 물살을 거슬러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이지요. 하는 일마다 세상이 환호하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며 자기 편으로 삼으려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진실로 그리스도인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버림받음과 고독과 실패 속에서도 부활의 기쁨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부와 성공과 출세가 아닌 수난과 죽음과 떠남을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의 마음을 알아듣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고통의 산도 용기내어 직면하다 보면 넘어설 만한 언덕인 경우가 있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두려움과 근심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니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각자의 소명을 채워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