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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령 강림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5월 23일 성령 강림 대축일 낮 미사

 

2021.05.23.mp3

2.42MB


교회의 탄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령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겁에 질려 스스로를 닫힌 문 안쪽으로 가둬버린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스승이 잡혀가시면서 깨지기 시작했던 그들의 평화는 지금 폐허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폐허 위에 다시 평화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버리고 흩어졌던 제자들이 이미 용서받았음을 평화로 증명하십니다. 또 환난 중에 서로에게 실망했던 제자들에게도 서로를 용서하라고, 더 나아가 스승을 죽이고 자신들마저 위협하는 이들도 용서하여 평화를 얻으라고 초대하십니다. 평화는 용서와 화해의 증거이고 열매입니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을 것이다.'"(요한 20,22-23)

하느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시어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실패와 절망으로 무너진 제자들에게 새 창조의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숨결이 들어옴을 관상합니다. 얼마나 친밀하고 부드럽고 뜨거운 사랑인지요! 이 숨이 우리 영혼과 육신 곳곳에 퍼져 우리를 새롭게 하고 주님과 연결된 일치의 존재로 만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숨, 성령께서 주님과 우리를 하나로 이어 결속시키지요. 주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끝까지, 죽기까지 사랑하고 용서하셨던 예수님의 그 숨이 우리를 사랑의 존재, 용서의 존재로 바꿉니다. 예수님과 하나의 호흡을 공유하는 이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1독서는 초세기 성령 강림의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4)

각 사람에게 내리신 성령을 굳이 감각을 통해 묘사하자면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불꽃 모양의 혀"입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경계와 장벽을 깨어 부수는 초월의 힘입니다.


다른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언어적 이해와 구사 능력을 넘는, 서로를 구분짓고 경계하며 차별과 혐오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다른 민족, 문화, 가치관을 지닌 이들에게 길을 내고 문을 뜷고 다리를 놓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사도 2,11)

성령을 받은 이들이 전하는 내용은 "하느님의 위업"입니다. 성령을 받은 이들의 선포는 자신의 교리를 단순히 통역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언어와 문화와 민족 안에서 활동하시는 한 분 하느님의 위업을 깨닫도록 그들을 일깨우는 거룩한 행위가 됩니다.


제2독서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목적을 밝힙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7)

성령은 공동선을 추구하라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성령을 받은 이는 그 은사와 선물을 자기 이익이나 영광을 위해 쓸 수 없습니다. 공동선을 자기 자신이나 가족, 소속 공동체와 제도만의 이익과 영달을 위한 자원으로 축소할 수 없고 그렇게 사유화해서도 안 되지요.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라면 그저 자신과 가족, 소속 공동체의 풍요와 안위, 발전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모두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시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주님과 숨을 공유하는 우리는 하나의 숨, 하나의 성령을 공유하는 형제들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그 숨으로 엮여 있듯, 우리 모두 역시 그 숨으로, 그 성령으로 엮여 있습니다. 한 성령을 받아 우리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한 몸 안에서 서로 연민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 몸 전체는 평화를 이룹니다. 이 평화가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한 성령을 받아 마신 우리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이웃들, 특히 병들고 가난하고 힘들고 슬프고 지친 이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 평화를 전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성령께서 더 큰 평화의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온 누리와 모든 이에게 성령의 은총이 충만하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소서, 성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