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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낮 미사

 

2021.06.29.mp3

2.55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모든 믿는 이들의 삶을 끌어가시는 주님을 보여 주십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예수님께서 당신을 누구라 하는지 물으시자 베드로가 놀라운 답변을 합니다.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 그리고 그분 강생의 목적이 명확히 담긴 말씀이지요.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예수님은 베드로의 답변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일깨우시며, 그래서 그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은 자기 지식과 능력, 지위에 기대어 성과를 누리고 과시하는 삶을 행복이라 여기지요. 반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하며 믿고 따르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 눈에 어찌 보이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모두 좋은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감옥에 갇혔다 구출된 베드로 사도의 일화를 전합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사도 12,11)
야고보 사도의 순교 뒤 감옥에 갇힌 베드로는 헤로데가 그를 끌어내려던 바로 그 전날 밤에 신비스런 힘으로 감옥을 벗어납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베드로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쇠사슬에 묶인 베드로는 그저 천사가 시키는 대로 일어나,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고, 겉옷까지 입은 채 그를 따라 나섭니다. "저절로" 열린 문을 지나서 걷다가 천사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베드로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깨닫게 되지요.


베드로 혼자 힘으로도, 그의 투옥이 안타까워 기도로 매달리는 동료들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삶에 직업 개입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러 온 천사는 자기의 할 일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도로서의 본인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자신의 약함을 겸손히 고백하던 사도가 자기의 삶을 이처럼 고평가합니다. 하지만 이는 교만이나 착각, 자화자찬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에 기반을 둔 진솔한 자기 인식입니다.


치열하게 복음을 위해 투신했던 사도는 자기 삶에서 어떠한 후회나 미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열혈 유다교 신봉자, 율법의 수호자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변모되어 그분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부으면서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2티모 4,17)
이것이 사도가 그처럼 확고히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자기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곁에 계시면서 굳세게 해주셨기에 가능한 투신이었지요. 무조간 못 하고 안 하는 게 겸손이 아니라, 이처럼 부족하고 미약한 자신을 통해 움직이신 하느님을 믿고 행동하여 맺은 열매를 오로지 그분 영광으로 돌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은 인간으로서는 한없이 약하고 부족한 이들을 당신으로 채워서 구원사업에 도구로 쓰십니다. 그들이 모든 업적을 당신께 돌릴 줄 아는 겸손을 배우기까지 인내로이 단련하시면서 이끄셨지요. 베드로가 받은 "하늘 나라의 열쇠"(마태 16,19), 바오로가 얻은 "의로움의 화관"(2티모 4,8)은 하느님 신의의 선물이며,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사도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기리는 오늘, 그들을 채우고 이끄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며 우리 각자의 소명도 돌아보는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꾸었던 꿈이 당장은 실패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 곁자리를 떠나지 않으시면서 우리를 굳세게 해 주시는 주님이 계심을 믿고 꿋꿋이 나아가시길 기도합니다. 그분께서 부르셨으니 그분께서 손수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실" 테니까요.

사도 성베드로와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