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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5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2021.07.16.mp3

1.77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8)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항변하자 그분께서 답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의 행동을 추수에 비견하는 노동으로 비약해서 올가미를 놓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편협한 사고를 넓혀 주고 싶어하십니다.


안식일 준수는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이라는 정체성에 기인합니다. 엿새에 걸쳐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셨던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간들도 그리하기를 바라셨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도 이날 노동을 멈추고 쉬면서 하느님과 더불어 거룩히 지냅니다.

아울러 안식일은 땅과 일꾼들과 종들과 가축까지 쉽니다. 쉼으로써 이 모두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겸허히 고백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것처럼, 이날은 일상의 노동에서 잠시 놓여나 자신을 돌보고 회복시키며,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작은 파스카의 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부유한 지주라도 안식일을 통해 자기 조상이 노예였음을 기억하고 모든 피조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하느님 마음이 되어 보는 겁니다. 땅과 일꾼과 종과 가축의 안위까지 배려하는 안식일의 정신은, 그래서 "자비"입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 결정적 사건, 즉 열 번째 재앙에 대해 기술합니다.

"그 피를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탈출 11,7.13)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 짐승의 피가 발려진 집의 사람들은 죽음을 면합니다. 재앙은 하느님 백성의 자유와 해방과 안식을 거부하는 이집트인들의 교만을 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단 한 번의 희생제사를 바치신 영원한 사제인 동시에 아버지께 희생제물로 바쳐진 순결하고 흠 없는 어린 양이십니다. 그분의 피는 짐승의 피와 달리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는 인간을 옭아매는 죄악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다가, 마침내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안식일의 주인이신 겁니다. 그분은 안식일이 자비와 사랑의 축제 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남녀노소, 빈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피조물의 쉼은 강요가 아닌 권리로 보장되고 축복받아야 합니다. 그날이 생명을 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허겁지겁 밀 이삭을 비벼 입에 털어넣는 제자들을 보시며 "쯧쯧, 얼마나 허기졌으면..." 하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의 안식은 그런 주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시작할 것입니다. 다정한 눈길 한 번, 소박한 격려 한 마디로 형제와 이웃의 생명을 되살리고 회복시키며 안식일의 정신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