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9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2021.07.1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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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표징과 기억에 대해 숙고하게 해 주십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9)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청하자 그분께서 안타까워하시며 답하십니다. 이제껏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치유와 구마 기적들을 보아왔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도 완고하여 믿기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크고 더 확실하고 더 결정적인 표징을 자꾸만 요구하는 겁니다.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치다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요나 예언자가 죽지 않고 사흘만에 육지로 뱉어내어져 결국 사명을 완수하게 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요. 이것이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실 예수님 앞날의 표징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요나 이야기는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 우리에게 또 다른 표징이 됩니다. 하느님의 명을 거부하고 도망친 것도 모자라, 하느님께서 마음을 바꾸어 니네베를 멸망에서 구하신 것이 못마땅해 불평하던 완고함이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전한 이스라엘의 예언자 자신에게서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반면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은 예언을 듣고 임금부터 짐승까지 모두 뉘우치고 주님께 돌아섰지요. 말씀을 전한 예언자의 인격이나 됨됨이, 자격을 따지지 않고 전달된 말씀의 내용과 그 원천이신 분을 받아들여 겸손히 생각과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마태 12,42)
예수님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왕궁을 찾아왔던 남방 여왕도 언급하십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왔었지요. 하느님 백성이면서 하느님 말씀에 마음의 문을 닫은 완고한 이들과, 이방인이면서 하늘의 지혜에 활짝 열려 있던 이들이 크게 대조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표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1독서는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이 이집트 군대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며 갈대바다 앞에 선 절체절명의 순간을 들려 줍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탈출 14,11)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 울부짖으며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그동안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이집트를 호되게 치셨던 열 개의 재앙을 잊어버린 듯하지요.
아무리 놀랍고 신기한 기적도 기억하고 내면화해서 마음의 변화로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그저 한 순간의 쇼로 잊혀집니다. 믿음을 발휘해야 할 순간이 닥쳐오면 그 기적이 진정 표징으로 남았는지 마술같은 깜짝 쇼로 끝났는지 드러나지요.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탈출 14,18)
하느님께서 갈대 바다를 둘로 가르시어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걸어 물을 건너고, 그 뒤로 물이 되돌아와 추격하던 이집트 군사들은 전멸될 것입니다. 이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들을 위한 것도 됩니다. 결국 그들도 주님을 알게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겪은 뒤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주님께 대들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완고한 마음이 표징을 기억하고 내면화하지 못해서이고, 근본적으로는 하느님 사랑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의 사랑과 백성의 기대를 충분히 받았을 종교 기득권자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하느님 사랑의 결정체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단순한 이들, 죄인들, 이방인들이 먼저 예수님을 받아들여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역사적 진실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사실 마음을 조금만 열고 보면 우리 각자의 삶에도 주님의 손길이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되지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저 우연이나 행운 정도로 지나갈 일들이지만, 믿는 우리들은 아무리 작은 일도 하느님 사랑의 표징으로 소중히 받아들여, 기억하고 내면화해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게 되지요. 그렇게 우리는 오늘 지금 여기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삶의 곳곳에 알알이 박혀 있는 주님 사랑의 손길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영성체송)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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