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2021.07.2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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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가 영육의 양식을 어떻게 얻는지 보여 주십니다.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직면하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합니다. 파스카의 지향과 목적까지 왜곡한, 도를 넘긴 원망이긴 한데, 극한의 배고픔을 아는 이라면 그들의 절규를 그저 불평으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출 16,15)
그들의 굶주림이 탐욕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에 주님께서 기꺼이 해결해 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진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들게 하시고 광야 위에 아침마다 이슬과 함께 만나를 뿌려 주시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육적 생명을 지탱하는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들이 머무르는 광야 도처에 내립니다. 백성이 있는 곳에 만나가 있으니 경쟁하지 않아도 모두가 거둬들여 양식을 삼을 수 있습니다. 만나는 욕심껏 많이 거두어도 쌓아둘 수 없고, 적은 듯 거두어도 모자라지 않는 신비의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일용할 양식을 이런식으로 주신 건 아닐까요?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먹으면 누구에게도 넘치지 않고 또 아무도 굶주리지 않는 충분한 양으로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부 탐욕스런 이들이 공공의 양식을 약탈하고 축재하여 힘과 무기로 삼아 부를 누리면서 훨씬 더 많은 대다수의 다른 한 쪽이 굶주리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복음에서 예수님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씨앗에 비유하십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예수님은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땅을 네 상태로 나누십니다. 만나가 광야 도처에 깔리듯 말씀의 씨도 땅을 가리지 않고 뿌려지지요. 그런데 여기서 '과연 나는 길바닥인가, 돌밭인가' 고민하고 자책에 빠지는 순간 묵상을 길을 잃어버립니다. 주님의 마음을 만나는 기도가 아니라 성찰과 반성, 실망으로 끝나버릴 소지가 다분하니까요.
누구는 길바닥이고 누구는 좋은 땅이 아니라, 한 존재 안에도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이 혼재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상태에 따라 이런 조건들이 번갈아 위세를 떨치며 존재를 장악하기도 하지요. 우리의 육신은 물론 이성과 믿음, 감정 등이 완전하지 못해서 늘 최상의 상태, 가장 좋은 조건에만 머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 말씀은 일단 뿌려집니다. 씨 뿌리는 분, 주님께서 조건을 붙이지 않고 당신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던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내게 거부당해 튕겨나가지 않도록, 영혼이 척박한 상태든 비옥한 상태든 일단 어떻게든 심겨지도록, 적어도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영혼이 좋은 땅의 상태일 때 심겨진 말씀이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러면 그동안 싹 튀우지 못한 씨앗의 실패와 유실을 만회하고도 남겠지요. 이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양식의 신비입니다.
사실 육적 양식이나 영적 양식이나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런데 물리적 양식인 재화를 신비의 양식 만나처럼 모두가 균등히 누릴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 쪽은 독점으로 쌓아둔 채 썩고 과용과 남용으로 병드는 반면 다른 한 쪽은 굶주려서 스러져가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양식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뿌려진 말씀은 귀를 활짝 열어 경청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머무르며 손을 활짝 열어 실천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열매를 맺지요.
영의 원리도 육의 원리처럼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긴"(마태 13,12) 하지만, 영혼의 성장과 풍요가 타인을 빈곤하게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명백히 다릅니다. 오히려 영적 양식에 대한 열성으로 맺은 열매를 통해 교회와 세상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복음 환호송)
오늘도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십니다. 말씀이신 분이 말씀을 전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얼마만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말씀을 품는가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지겠지요. 주님께서 우리 존재를 채워주시려 뿌리시는 영육의 양식을 겸손히, 은혜로이, 감사히 받아 풍성한 열매 맺으기를 기원합니다. 이 양식은 우리만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과 모든 피조물을 영원히 살게 할 귀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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