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2021.07.24.mp3
3.20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영적 삶에서 가라지와 같은 장애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마태 13,25)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가라지가 뿌려졌다는 말씀에는 상징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복음서 곳곳에는 "깨어 있어라"는 예수님 말씀이 새겨져 있지요. 잠들었다는 것은 육신의 잠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 각성이 무뎌진, 영혼의 무방비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나는 잠들었지만 내 마음은 깨어 있었지요."(아가 5,2)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영혼의 상태를 아가의 한 구절이 잘 표현했습니다. 잠들었지만 깨어 있는 상태! 영적 삶에서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추구하는 바가 확실한 이는 비록 육신이 잠든 때라도 항상 사랑하는 분을 향합니다. 주님은 그러한 이의 육신이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상관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오셔서 일치를 이루시지요.
육신과 함께 영혼이 잠든 때는 원수가 활동하기 좋은 때입니다. 신분이나 지위, 영적 학문적 성취로 기본 진리와 양심에 무감해진 영혼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스스로 만족해 자기도취의 잠에 빠진 순간, 언제라도 원수의 먹잇감이 되기 쉽지요. 그러면 주님이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리셨어도 어느새 덧뿌려진 가라지 때문에 밭 전체가 몸살을 앓게 됩니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마태 13,28)
예상에 없던 가라지의 출몰로 종들이 수선을 피웁니다. 열매를 맺을 때에 비로소 드러난 가라지가 밀들과 온통 뒤섞여 있어 쉽게 제거하기도 어려울 듯 보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오히려 담담하지요. 가라지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고,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아는 까닭입니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
이것이 주인의 해법입니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자칫 소중한 밀 한 가닥이라도 상할까 걱정합니다. 좋은 밭에 좋은 씨를 뿌리고서는 추수 때까지 밀과 가라지를 함께 두고 보아야 하지만 주인인 본인이 감수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영혼에게 뿌려진 가라지를 그렇게 인내하십니다. 이 세상에 혼재하는 가라지들도 마찬가지십니다. 그가 잠들거나 무뎌졌다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밀들이 가라지에게 치이지 않기를 격려하고 응원하십니다.
사실 가라지로 인해 손해를 보는 이는 종들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거둬들일 밀의 상태나 수확량에 영향이 미칠 것이 뻔하지만 그분은 감수하십니다. 어쩌면 밀도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불편하고 성가신 기간을 견뎌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
당장 가라지를 제거하고 해치워 원래의 순결하고 청정하고 완벽했던 상태를 구현하는 일은 주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라지에게 곳간의 자리를 내어주지도 않지요. 가라지 때문에 오염되고 훼손되었다고 밀을 가라지와 뭉뚱그려 태워 버리지도 않으실 겁니다. 수확 때에 비로소 밀과 가라지의 운명은 갈릴 것입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주님의 계약이 체결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3)
"계약의 책을 들고 ... 백성에게 들려 주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탈출 24,7)
짐승의 피를 뿌리며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모세는 반복하여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원하시는 바를 들려 줍니다. 그리고 백성도 그대로 따르겠다고 반복해 선언하였지요. 백성은 하느님 영광과 권능을 체험했기에 그 순간 진지했고 의욕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심은 오래지 않아 불안과 맞바꾼 금송아지 숭배로 변질되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입교, 세례, 견진, 영적 체험의 순간들... 그때마다 얼마나 우리 마음이 타올랐고 열정이 충만했으며 힘주어 신앙을 고백하고 약속들을 바쳤는지요!
그토록 신앙과 사랑이 충만했던 우리건만 잠든 사이, 깨어 있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가라지들이 우리 존재 곳곳에 들어와 깊숙이 박혀 버립니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의식한 순간은 이미 혼자 힘으로 뽑아내기 어려운 상태로 자란 뒤입니다. 놀라며 소란을 피워보지만 자기 손으로 뚝딱 제거하기는 정말 어렵지요.
이때는 자칫 자신 안에서 주님의 은총으로 자라난 밀들을 바라보기보다 가라지만 바라보며 슬퍼하고 절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가라지보다 주인의 자비를 바라보며 힘과 용기를 내어 함께 품고 가야합니다. 그분이 인내하시니 우리도 인내하며, 그분께서 거두어 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행여 우리 존재 안에 가라지가 보이더라도 너무 놀라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어쩔 수 없이 수확 때까지 동행해야 하는 가라지는 이미 주님도 잘 아시니 그분께 숨기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늘 깨어 있도록 영혼을 정비하면서 원수에게 더는 틈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이 주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머물고 사랑하고 실천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우리 영혼이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여라. 그 말씀에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다."(복음 환호송)
가라지만 보지 말고 말씀을 주목해 우리의 영적 여정을 채워나가길 기원합니다.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7.27 |
---|---|
~ 복되신 동정 마리아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7.26 |
~ 연중 제 16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7.23 |
~ 연중 제 16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7.21 |
~ 연중 제 16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