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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2021.07.2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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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애와 심판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탈출 33,11)
모세와 주님의 관계는 매우 각별했습니다. 광야에서 아론과 미르암이 모세를 시기했을 때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민수 12,7-8) 하고 말씀하실 정도였지요.


모세는 충직함과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도 그에게 당신 마음과 계획을 열어보이십니다. 오늘 화답송에서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하고 노래하듯, 경외심은 하느님의 자애를 부릅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이처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됩니다.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탈출 34,8)
주님께서 모세에게 자비와 자애라는 당신 얼굴을 드러내시자 모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땅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후 하느님께서 실망과 분노로 백성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기회가 닿는 대로 이렇게 반복해서 빌고 또 빌며 함께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
사실 백성이 우상 숭배에 떨어졌을 때 모세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요. 이런 경우에는 대개 죄 지은 이들과 자신을 분리해 스스로는 결백하다고 주장하기 일쑤인데 모세는 달랐습니다. "저들의 죄악과 저들의 잘못"이 아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이라는 표현에서는 죄를 지은 백성과 자신을 동일화하면서 그 죄를 자신이 함께 떠안고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립니다. 무죄하신 분께서 세상의 죄를 대신 지시고 스스로 가장 비천한 죄수의 신분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지요. 그분의 희생 제사는 죄인들과 하나로 취급당하기를 꺼리지 않으시고 성부 앞에서 "저희"의 범주 안에 모든 죄인들을 끌어안으신 겸손과 자애의 결과입니다.

복음은 '밀과 가라지 비유'의 해설 부분입니다.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마태 13,40-42)
예수님 입에서 무시무시한 심판의 말씀이 떨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죄에 떨어지게 만드는 약함을 이해해 주시며,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고, 언제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모세가 죄를 지은 백성을 위해 주님께 그토록 간절히 애원하였듯, 성부 하느님 앞에서 인류를 떠안고 당신을 죽음에 넘기신 예수님이시지만, 다가올 심판의 때를 유야무야 건너뛰지는 않으시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모호하고 미지근하게 선과 악의 경계에서 비틀거리는 우리를 위협하고 겁박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너무 늦지 말기를" 바라시는 염려의 뜻으로 들립니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마태 13,43)
이어지는 내일 미사의 제1독서를 미리 보면,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주님과 그토록 친밀한 시간을 보낸 뒤 빛나는 얼굴로 산을 내려옵니다.(탈출 34,29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인의 빛나는 얼굴'이지요.


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분을 마주하는 이들이 그 빛을 반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와 악의 유혹을 벗어버리고 고통과 시련의 도가니를 거친 영혼이 하느님 자애로 맑고 순수하게 변모되어 갑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영혼은 찬란한 빛 안을 거닐며 빛이신 분과 함께 빛이 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뿌리신 좋은 씨앗들이지요. 이 본성 안에서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답게 영글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나날이 맑은 빛을 더해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