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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9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2021.08.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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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 앞에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 하느님 신앙에 대해 거듭 다짐을 받습니다.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여호 24,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마음을 기울여라."(여호 24,23)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이 끝나고 여호수아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지 힘 주어 이야기합니다.


경외심과 온전한 의탁, 진실된 섬김,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향해 기울어지는 마음은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에게도 요구되는 자세입니다.

복음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막자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닳고 닳아 신앙의 순수와 열정을 잃어버린 기성세대에게서보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서 하늘 나라로 가는 자질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직 어리고 약하고 부족한 어린이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그들은 생존을 위해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깝게는 부모나 친지의 돌봄을 받고,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존재들인 겁니다.

하느님은 어리고 약하고 부족해도 당신께 다가와 의탁하는 이들을 기꺼워하십니다. 세상사에 능한 어른들이 능력 있고 부유하고 수완 좋은 이들과 인맥을 쌓으려 혈안이 된 것과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믿어주는 이를 계산 없이 반기시는 어린이와 같은 분이시니까요.

"그냥 놓아 두어라. ... 막지 마라."
이 말씀은 오늘날 스스로 어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에게 던지시는 일갈이기도 합니다. 윤리와 규범으로 무장하고 죄인과 의인을 가르며 흑백을 구별하느라 마음의 온기를 잃어버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 시대에만 존재하시는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 서품, 서원 연차나 지위, 신분에 기대어, 스스로 주님께 다가가지 않으면서 남들도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오늘 여호수아가 일깨워준 신앙인의 모습에서 다시금 방향을 정돈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하며, 그분을 진실하게 섬기고,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하느님을 향한 기울기를 간직한 이는 나이가 몇이건 어떤 신분이건 하늘 나라에 "와락" 받아들여질 어린이의 영혼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도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어린이의 영혼으로 자신의 안위를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를 대신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진정한 목자요 순교자셨지요. 성인은 그 영혼 그대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져 우리를 위한 전구자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내느라 우리 각자가 잃어버린 어린이다움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고 회복하는 오늘 되시길, 그리고 그대로 주님의 축복의 손길 아래로 "와락" 달아드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실 하늘 나라 입성의 자격은 신분도 학식도 능력도 재물도 업적도 아닌, 그저 믿고 의탁하는 순수한 마음이랍니다. 엄지를 척 올리며 "아빠 최고!" 하는 어린이의 기대에 찬 눈망울로 오매불망 주님을 향하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