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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0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2021.08.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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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의 조건을 이야기하십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마태 19,23)
부자 청년이 슬퍼하며 떠나간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제의 묵상과 연관지어 본다면 '하느님이 아니라 재산에 의지해 구원을 얻으려는 이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풀이가 되겠지요.


이러 저러한 경로로 재산을 넉넉히 얻어 누리는 사람이라면 단지 소유한 것의 수량으로 자신의 구원이 가늠된다는 말씀이 퍽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물리적 수량보다는 본인이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지를 성찰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자신이 지닌 재산을 믿고 살아가는지,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지 말입니다.
  
재산이나 권력, 지식이나 능력 등 많은 것을 지니고 살면서 하느님 앞에 겸허히 자신을 내맡기고, 가난한 이들에게도 허심탄회하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런 이의 구원은 하느님도 반기실 겁니다. 역사 안에서 그런 부자가 아예 없지도 않을 테구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마태 6,21)는데, 부자를 부자이게 만드는 것들의 속성이 우월의식, 교만, 이기주의, 탐욕, 허세와 너무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본성을 이기고 하늘 나라에 들어갈 만큼의 성덕을 쌓기란 더 어려울 것이니, 그런 부자가 있다면 우리도 존경하고 하늘 나라도 환영하는 것이겠지요.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구원이 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십니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판관 6,15)
하느님께서 미디안족에게 핍박을 받는 이스라엘을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통해 구원하시려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지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구원을 능력자나 재력가, 탁월한 장수의 손에 맡기지 않으시고 이처럼 작고 미약한 존재를 통해 이루십니다. 훗날 등장할 다윗 역시 양을 치던 어린 목동에 불과했으니까요. 제 잘난 맛으로 능력과 재력을 휘두르는 이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마련이지만, 자기 처지를 잘 아는 가난한 이는 자신을 움직이신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냅니다.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1코린 7,30)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은 소유에서 온전히 자유롭기 어려운 우리 모두가 구원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힌트를 줍니다.


벗님은 가진 것이 많습니까? 그렇다면 그에 따른 만족과 우월감과 허영심을 내려놓고 감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미 소유한 자본과, 타인의 시간과 능력, 세상의 시스템을 이용해 더 큰 부를 쌓아가는 중입니까? 그렇다면 그 수혜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협력하면 됩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마태 19,26)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하셨네."(복음 환호송)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이루어진 부유함과 가난함의 신비로운 교환이 이 세상의 공동선을 위한 모범입니다. 이 세상 모든 형제가 함께 복을 나누어 누리며 살아가도록 주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를 통해 부자도 구원을 받고 가난한 이도 생명을 누린다면, 누구도 손해볼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할 겁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의 바람이니까요. 


지금 우리가 부유하건 가난하건 모든 길은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구원의 여정 안에서 허락하신 삶의 여건과 처지를 겸손히 받아 안고 주님께 의탁하며 꿋꿋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