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2일 연중 제21주일
2021.08.2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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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의 탄신 200주년을 경축하는 오늘 주일 미사의 말씀에서는 주님을 향한 신앙 고백이 들려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한 6,51)이라고 하신 뒤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말다툼까지 벌어집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도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거북해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살점을 베어내거나 물질적인 빵으로 둔갑하는 마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영육의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자신을 내놓으시겠다는 뜻이니까요.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생명 유지 활동이 먹는 행위이니, 그분은 당신이 먹거리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제자들 가운데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에 불편함과 거북함을 느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난 뒤입니다. 그들의 귀와 마음이 영적으로 열리지 않은 까닭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하는 데 한계를 느낀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베드로 역시도 아직 "생명의 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저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반복해 보여주실 것으로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9)
하지만 베드로는 적어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분을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믿고, 또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그래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이때 믿는 이는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기를 멈추고 믿음에 안착해서 그저 기다리며 머무르는 자세로 전환합니다. 이 인내가 종종 신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는 가나안 땅 분배를 마친 뒤, 여호수아가 스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야훼 신앙을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나와 내 집안을 주님은 섬기겠다."(여호 24,15)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4,18)
이집트를 나온 뒤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세월 동안 첫 세대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 정탐을 다녀와서 백성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 했던 칼렙과 여호수아만 약속의 땅을 밟게 되었지요.
지금 스켐에 모여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은 야훼 하느님을 불신하다 죽어간 이들의 후손으로 이집트의 재앙이나 갈대바다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입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거나 직접 체험하지 않은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누누히 듣고 믿음으로 수용하여 기억의 체계로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중요한 징검다리 세대인 것입니다. 직접 체험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작동시켜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야 하는 이들이지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혼인 관계의 신비로 이야기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31-32)
사도 바오로는 혼인한 부부가 서로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남편과 아내의 모범, 본보기, 원형은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듯 남편에게 그리 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스도와 교회, 둘 사이는 종속이나 차등 관계가 아닌 신비적 일치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 모든 구성원은 그 지체이니,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는 뗄 수 없는 한 몸입니다. 남편과 아내도 그렇습니다.
혼인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영으로 알아들어야 하는 신비입니다. 자칫 문자 그대로 누가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는지, 머리가 높은지 몸이 중요한지 따지고 든다면 결론 없이 맴도는 거북하고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서로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섬기는지 영으로 감지하고 믿고 관상하는 이는 어렵잖게 그 일치의 신비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을 말씀하신 뒤 이천 년이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믿음으로 그 사랑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제로 성체성사를 통해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빵을 이 세상에서 현존케 하시는 분은 바로 "말씀"이시지요.
말씀과 성체 안에서 나날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으며"(화답송) 이 믿음을 구원의 역사 안에서 계승하고 전하는 우리 모두는 참으로 복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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