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2021.08.2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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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행복이 넘치는 어느 만남을 보여 주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필립보의 권유로 당신을 만나러 오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께 나아오는 피조물을 보고 기뻐하시는 창조주의 탄성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나타나엘에게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전형을 보십니다.
"거짓이 없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하느님 백성이 되어기기 위해 지켜야 할 지침들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머니 배 속에서 지음 받을 때부터 존재의 뼛속까지 하느님 앞에 활짝 펼쳐져 있는 존재입니다. 그분께는 숨겨진 것도 감추인 것도 하나 없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이 무엇보다 앞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당신의 뜻을 찾는 충실한 자녀이기를 바라십니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은 일상의 중요한 순간을 떼어 하느님 앞에 머무르며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삶의 많은 부분을 일로 보내는 이도 있고 돈 버는 데 몰두하는 사람도 있지요. 떠들썩한 유흥과 어울릴 사람을 찾는 이도 있고요. 그 중에는 성실하게 진리를 찾고 말씀에 머무르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타나엘에게서 그리스도의 고귀하고 맑은 신부다움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이에 나타나엘이 화답합니다. 그 역시 기쁨에 차서 외칩니다. 평생을 기다려 온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아를 만난 기쁨입니다. 그 역시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구원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시리라는 예언에 묶여 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나자렛 출신이라는 점이 못내 미심쩍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확신에 차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메시아를 고대하며 영적 스승을 찾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예수님의 존재와 말씀과 행동은 새로운 충격과 각성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시작도 못 했지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실 하늘 나라의 실체는 그들의 기대나 바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의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보여 주십니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묵시 21,10-11)
천사가 묵시록 저자에게 보여 주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는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성도 예루살렘은 이제 지역이나 공간적 개념을 넘어 하느님께서 친히 머무르시는 영원한 거처, 바로 교회인 우리 자신입니다.
묵시록 저자는 어린양의 신부인 예루살렘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공들여 묘사합니다. 매우 값진 보석같은 광채는 그 고귀함과 거룩함을, 수정처럼 맑은 빛은 흠도 티도 없는 순결함을 드러냅니다. 이는 사도 바오로가 예견했듯,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모습입니다.(에페 5,27 참조)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21,14)
열두 사도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초석입니다. 초석은 기둥과 땅을 연결하는 주춧돌로, 기둥에서 전해지는 무게를 땅에 고루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지요. 신부인 교회의 신앙은 누구보다 예수님의 가까이에 머물며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도들 위에 단단히 세워졌습니다. 사도들 위로 긴밀히 쌓아올려진 교회는 그래서 아름답고 진실되며 굳건합니다.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서 주님과 마주할 때, 그분께서 우리를 알아보시며 무어라 감탄하고 탄성을 올리실지요? 그분은 우리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걸 기억하실까요? 또 그때 우리는 이 지상 삶에서 그토록 그리던 주님께 무어라 사랑과 믿음을 고백할까요?
어쩌면 그분께 숨겨진 것 하나 없는 처지에 부끄럽고 송구하고 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주님은 그조차 넉넉히 받아 안아 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떠올리는 오늘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그렇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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