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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녀 모니카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의 조건을 알려 주십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마태 25,4)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다섯은 등만 지니고 있었고, 다섯은 등과 함께 기름도 따로 챙겨왔지요. 이 "기름"의 유무가 운명을 가릅니다.


"등"은 하늘 나라에 초대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조건일 겁니다. 이를테면 '세례성사' 기록이나 '교적'과 같은 외적인 표지지요. 그런데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이 "등"을 소유한 자체가 결정적 공로가 되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랑이신 분은 분명 그보다 더 원하시니까요.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등불을 지속적으로 밝히기 위해 기름을 따로 더 준비한 이들을 예수님은 "슬기로운 처녀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 처녀들은 신랑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음을 미리 예견하고,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최선의 준비로 성의를 표합니다. 한마디로 기다림을 아는 이들이지요. 그들에게 있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반드시 얻고 싶은 생의 목표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응답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등"은 지니고 있습니다. 형식이나 제도, 신분이 외적으로 그들을 인정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 형식 안에 내용물이 차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 내용물이 있어야 기다림의 시간을 견딜 수 있고, 부르심에 합당한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형식을 채우고 있는 내용, "기름"이 바로 영적 자원입니다.

"우리 등이 꺼져 가니"(마태 25,7)
이 기름이 모자라면 등은 차츰 꺼져 갑니다. 불이 꺼진 등은 무용지물일 뿐이지요. 영적 자원이 고갈되면 껍데기뿐인 정체성은 사그라지고 맙니다. 그러면 자신이 누구인지, 과연 부르심이 있었는지, 어쩌다 응답했는지 모호해지고 이내 무심하고 냉랭해집니다. 텅 비어버린 "등"은 그릇으로도 부적합하니 구석으로 밀려나 먼지만 쌓일 뿐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등에 채워넣어야 할 기름에 대해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1테살 4,7)
거룩함은 성별, 봉헌, 축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 소유로 따로 떼어진 존재라는 표징이지요.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라고 반복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 자녀로 뽑힌 우리에게 거룩함은 교양 선택 과목이 아니라 전공 필수 과목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추구하면서도 이 세상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어떻게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세상 이치에 흠뻑 젖어 세속인들과 다름없이, 아니 그들보다 더 탐욕하고 겉꾸미고 갑질하는 이기적 인생은 거룩함을 담지 못합니다. 하느님과 서로를 상호적으로 차지한 영혼의 등불은 선의와 평화와 기쁨, 비움과 나눔과 겸손으로 타오르니까요.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화답송)
그래서 시편 저자는 줄곧 기쁨을 노래합니다. 거룩히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사랑에 충만히 머무르며 이 세상을 견디어 내는 '길 위의 구도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혹여 준비한 기쁨이 충분치 못하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성녀 모니카처럼 더욱더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 소유의 "거룩함"을 지키며 "선행"으로 각자의 등잔에 "기쁨"의 기름을 채워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깨어 준비하는 이는 끝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성녀 모니카,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