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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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깨끗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십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루카 11,39)
예수님을 초대한 어떤 바리사이가 식사 전 손을 씻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랍니다.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은 율법의 내용이라기보다는 '조상들의 전통'에 속합니다. 이 전통은 구약의 율법을 풀이한 해설과 세세한 행동 지침을 전체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라고 하지요.
식사 전후에 손을 씻는 것은 옛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전에서 예식을 행하기 전에 사제들이나 레위인들이 손을 씻던 것을, 신심 깊은 바리사이들이 일상생활에 적용하였고, 율법과 전통 수호에 열렬한 이들이 이를 받아들여서 널리 퍼진 듯합니다.
바리사리들의 심중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손을 씻는 것이 하느님 앞에 정결한 존재가 되기 위한 충분 조건인지 생각해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물리적으로 손을 씻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겉과 속을 다 보시는 하느님께는 통할 리 없으니까요.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40-41)
사실 오늘의 복음 대목부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쏟아질 예수님의 불행선언이 시작되지요. 앞으로 사흘 동안 우리 역시 정신이 번쩍 들도록 듣게 될 겁니다. 예수님은 종교 제도 안에 공고히 자리 잡은 이들의 내면에 어떤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아십니다.
하느님 앞에 감추어진 것은 없습니다. 겉과 속을 다 보시는 그분께서 손만 잘 씻는다고, 예복을 잘 갖춰 입는다고, 율법의 문자만 잘 지킨다고 기꺼워 하실 거라 생각했다면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은 아직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겁니다. 심하게 말하면 하느님을 자기에게 편하게 편집하고는 그 앞에 껍데기로 서서 그저 신앙인이 체하는 수준일지 모르지요.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조차도 대견할 일이지만, 하느님은 인격적 관계맺음은 물론 어떤 마음으로 행하는지 동기와 지향의 순결함까지 원하는 분이시니까요.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해법은 아주 단순합니니다. 사람들 모르게 품고 있는 명예욕, 재물에 대한 탐욕, 자기의 실제 수준보다 나은 존재인 척하는 자기우상화를 내려놓고 이미 가진 것을 나누어 존재의 내면을 깨끗이 비우라고 권고하시는 겁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이들을 우려합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로마 1,21)
하느님을 아는 이는 그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앎이 곧 사랑이기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느님 안에 머무르지요. 하지만 영혼의 자리를 하느님 대신 욕망에 내준 이들은 허망한 생각과 악으로 기울어버린 어두운 마음으로 진리 대신 거짓을,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깁니다.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복음 환호송)
이런 생각과 마음을 지닌 채, 손만 잘 씻는다고, 율법의 문자만 잘 수행한다고, 타인에게 우러러보이는 그럴듯한 행동을 잘 연출한다고 하느님까지 속일 수는 없지요. 하느님 앞에 겉과 속이 깨끗한 존재로 서려면 이런 생각과 마음을 먼저 행구어내야 합니다. 살아 있고 힘이 있는 쌍날칼과 같은 말씀께서 바로 그 역할을 해 주실 겁니다.
깨끗한 영혼과 순수한 마음 안에 가장 순결하시고 정결하신 주님만을 모셔들여 그분께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내면을 차지하신 그분과 어울리지 않는 탐욕과 욕정일랑 남김없이 내려놓고, 은총으로 받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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