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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8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10.16.mp3

2.30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희망을 이야기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 12,8)
예수님은 우리의 증언을 목말라하십니다. 그분에게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면 우리가 그분을 안다고 하건 말건 상관없으실 텐데, 우리가 그분께 꽤 중요한가 봅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2,10)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잘 알고, 그 아는 바를 타인에게도 전하길 바라시지만,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심지어 당신을 거슬러 말할지라도 용서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해치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께 용서 기도를 바치셨지요.


그런데 성령을 모독하는 자에 대해서는 단호하십니다. 이는 앞으로 제자들이 활동할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11-12)
이 말씀에서 제자들의 앞날에 고발과 체포와 신문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예수님을 책으로 배우지 않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지내면서 삶을 나눈 예수님, 즉 그들이 아는 예수님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마주하게 될 이들은 종교지도층이나 정치 권력자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제자들이니, 가뜩이나 긴장된 순간에 무얼 준비한다고 해서 제대로 될 리 없지요. 오히려 그 때는 철저히 성령께 내어맡겨야 하는 순간이 될 겁니다.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시고 너희도 나를 증언하리라."(복음 환호송)
성령과 제자들이 함께 예수님의 증언자가 됩니다. 아직 겁쟁이에 부족하고 미숙한 제자들이 성령의 파트너가 되는 겁니다. 제자들이 성령의 도구로서 자기 힘을 빼고 성령께 온전히 의탁할 때 성령께서 내용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제 존재의 허약함에서 눈을 들어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과 희망의 모범인 아브라함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로마 4,16)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 믿었습니다."(로마 4,18)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정확한 당위성과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면 믿음은 별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과를 놓고 믿음을 거론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희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가 훤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인과론에 의거해 기다리는 걸 희망이라 하지 않지요. 아브라함의 예처럼 희망할 수 없는 처지에서 바라는 게 희망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의 조상이 되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내외 모두 생명력이 거의 끊겨갈 나이까지 아들 없이 기다린 믿음이 희망을 잉태한 것이지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여정은 한때 우리 가슴을 뛰게 했던 꿈이 뭐였는지조차 잊혀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그분의 목소리라고 믿고 걸어왔지만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아 무너질 때도 있지요. 바로 그 순간이 성령과의 파트너십을 떠올려야 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희망할 수 없는 순간, 그야말로 희망에 부고를 접한 그 순간에 우리 존재에 희망을 불어넣으실 수 있는 존재는 성령이시니까요. 성령께서 힘이 다 빠진 우리 안에서, 침묵하는 이성과 지식을 대신해서,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실 겁니다.         

신뢰가 깨어진 순간에 더 믿고, 희망이 스러진 순간에 더 희망하며 성령과 함께 각자에게 허락된 순례 여정을 계속하시길 기원합시다. 약속은 반드시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성령과 더불어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