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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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앞의 진정한 의로움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율법 학자들에 대한 불행 선언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에겐 경외와 믿음,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의 영역으로 축소되어 버린 듯 보입니다. 사실 그게 더 쉬우니까요. 그들에게 구원은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여 얻는 은총이 아니라, 율법의 문자적 의미를 정확히 실행하는 데 대한 보상 정도로 축소된 듯 보입니다.
인간이 깨우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지식은 '하느님을 앎'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이 제도가 부여한 권한으로 율법에 담긴 사랑의 깊은 샘을 덮어 버리고 그 언저리만 맴돌면서 다른 이들의 접근조차 방해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원래 율법은 하느님과 더 깊이 사랑을 나누라고 주어진 선물이지만, 편협하고 게으른 안내자를 통해 자칫 선량하고 단순한 이들이 율법은 물론 하느님마저 거북하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 소지가 있습니다. 소위 율법과 종교 전문가들이 하느님 사랑의 정수로 이어지는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기득권 유지와 백성의 통제에 더 도움이 되긴 합니다만...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앞에 진정으로 의로움을 획득하여 구원받는 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단언합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로마 3,21-22)
기존 유다인들에게 사도 바오로의 이 가르침은 가히 폭탄 선언과도 같았을 겁니다. 율법이 구원에 별 의미가 없다니요! 예수님을 적대하고 앙심을 품었던 종교 기득권자들이 사도 바오로에게도 같은 칼날을 겨눈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율법의 정신을 사는 것과 믿음은 별개의 길이 아니지만, 율법의 문자를 수호하는 것과 믿음은 다른 문제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문자를 고수하는 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지요. 문자 적용에는 마음까지 쏟아부울 필요가 없고 또 존재적 회개와 사랑까지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구원자시라는 믿음은 세상 시류에 역행하는 어렵고 모험적인 길이긴 하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존재적 방향 전환과 뜨거운 사랑, 벼랑 끝에서 존재를 던지는 믿음이 곧 구원의 상태니까요.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되는 길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민족이나 제도, 신분이나 타이틀에 의거해 의롭다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 주님과 깊고 친밀하게 엮인 사랑이 그분과 하나 되는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길에서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라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여러분과 저, 우리 모두가 더욱 겸손하고 선하고 충실한 믿음의 안내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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